1875년 항해도 평산에서 6대독자로 출생

관리자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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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항해도 평산에서 6대독자로 출생


나의 부친은 용모가 좋은 학자(또는 유사)였다. 동네사람들은 "샌님은 손끝까지도 양반"이라고 하곤 했었다. 한때 그는 부자였었으나 젊은 시절에 모두 탕진해 버렸다. 나의 모친에 의하면 내가 태어날 무렵에는 집안에는 재산이 없었다고 한다. "너의 아버지는 여자나 도박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친구와 술을 위해서는 있는 대로 모두 내놓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친구들과 술잔을 주고받을 때엔 세상에 어떤 일도 그보다 더 귀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취하여 비틀거리는 일은 없었다. 그가 만취했을 때는 얼굴이 창백해져 천천히 그리고 침착하게 걷곤 하였다. 그는 만년에 나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였는지 모른다. 나는 그 때의 그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늦둥이였다. 내가 태어날 때 나의 모친은 40이 거의 다 되었었다. 또한 나는 6대 독자였다. 내가 자손이 없이 죽으면 우리 집안의 긴 핏줄은 끊어지게 된다. 내가 나기 전 우리 집안에는 딸이 둘이 있고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은 얼마 후에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에 후손이 없는데다가 어머니는 자꾸 나이를 잡수시니 모두들 퍽 근심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어머니는 큰 용이 하늘에서 날아와 자기 가슴에 뛰어드는 꿈을 꾸고 깨어나서 가족에게 그 얘기를 하였는데, 그것이 나를 갖게 된 태몽이었다. 내가 태어날 때 우리 집안이 얼마나 기뻐했었는지 나는 그 얘기를 어머니한테서 여러 번 되풀이하여 들었던 기억이 난다.


(역주ㅡ 이 박사는 선조에 관한 글을 써놓았었으나 올리버 박사에게 원고를 전할 때 다음과 같은 메모를 첨부하였다. "나의 선조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정적들은 내가 민주제도를 세우려고 하지 않고 왕권을 회복시키려 한다는 자기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나의 족보를 캐내려고 애를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적은 것은 윤곽에 불과합니다. " 그러나 올리버 박사는 이박사의 전기에서 :이승만의 가계는 다년간 그를 울분하게 하는 것이었고 또 핸디캡이기도 하였다"는 전제를 한 후 그의 가보를 소개하였다.)


선조에 대한 말을 하려니 생각이 나는데 내가 어릴 때에 들은 이야기가 나의 어린 마음속에 얼마나 깊은 인상을 주었던지 나는 평생 족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인즉 이렇다.

"어떤 사람이 죽은 뒤에 그의 혼이 타계에 들어가서 그곳 궁전의 구석구석을 안내받았다. 그러는 중 양반들이 살고 있는 어느 곳에 들어갔더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유난스럽게도 어찌나 말라 빠졌던지 뼈와 가죽만 남아 아주 가엾은 몰골들이었다. 어찌된 영문인가 하고 보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와서 자기네들은 양반들의 유명한 조상들인데 자기들 후곤들이 자신들의 생계를 개척하여 나가지를 않고 늘 선조들만 뜯어먹어서 조상들의 이렇게 되었는데 돌아가서 제발 좀 그러지들 말아달라고 전해주기를 부탁하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우리나라 양반들이 자기 집안의 족보나 아니면 예부터 내려오는 명문 집안들의 족보를 들여다보면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았었다. 그들은 자기나 자기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일을 하지 않고 옛날 공을 쌓은 그 어느 누구의 21대 후손이라거나 42대 후손이라고 내세우며 자기를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는 손끝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동포의 등을 처먹고 살았는데, 나는 이런 것을 참으로 싫어했었다. 나의 선친도 아름다운 책장에다 24권으로 된 우리 집안 족보를 모셔 놀고 늘 들여다보면서 우리 집안 본가 줄이 어떻게 되었고 지파가 어떻게 되었다는 것을 훤하게 통달하고 있었고, 나도 자신처럼 될까 해서 여러 번 그 이야기들을 되풀이하여 주었는데 내가 전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더니 퍽 낙심하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