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협회와 황무협회의 충돌

관리자
2017-10-31
조회수 750

독립협회와 황무협회의 충돌



황제는 민공과 한장군을 불러 전력을 다하여 반정부적인 기세를 막을 것을 당부하였다.

(역주 ㅡ 여기에서 민공이라 함은 새로 경무사로 임명된 민병한을 말한 듯하다. 한장군이란 법무대신 겸 고등재판소 재판장인 한규설을 가리킨 것이다. 한규설은 그 전에 포도대장과 장위사를 지낸 바 있다)

민공과 한장군은 만민공동회에 나타나 "폐하께서 여러 가지 개혁을 시행하실 것이니 너희들은 물러가라"고 했으나 사람들은 듣지를 않았다.

(역주 ㅡ 여기에 이승만 박사가 기술한 독립협회의 17인 간부 체포와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만민공동회에 대해서는 '대한계년사' 상권 259~317면과 신용하 '독립협회연구' 402~440면을 참조, 만민공동회에 나왔던 고종의 칙사를 민병환과 한성판윤 정익용이었다. 여기에 기록된 사건은 1898년 11월에 있었던 일인데 이 박사는 24년이 지났을 때 이 글을 쓴 것이다.)

홍종우와 길영수를 두목으로 하는 왕당파[수구파]에서는 보황회[항국협회]를 조직하였는데 이는 예부터 내려오는 치밀하게 조직된 보부상들의 조직을 이용한 것이었다. 민족주의자들은 고종이 피난하고 있던 외인 거류지로 옮겨갔다. 당시 러시아공사관에 머물고 있던 고종은 궁궐로 돌아가야 한다는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이 적극적으로 강하였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으나 그는 민비를 살해한 일본사람들이 두려워 정동에 있는 외국공관 및 선교사지역에서 떠나기를 싫어하였다. 17명의 간부들이 석방된 후에 우리는 정동으로 옮겨간 인화문 앞에 운집하였다.


길영수가 인솔하는 보부상들이 서대문으로 와서 우리의 집합장소에 도달하자 공동회에 모였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반대방향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나는 모임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던 중인데 길이 보부상들의 선두에 서서 따라오는 것을 보자 흥분하여 자제를 잃고 그에게 달려가서 그를 발로 힘껏 찼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나를 두 팔로 꽉 껴안고는 "이승만씨, 진정하고 빨리 달아나시오"한다. 내가 뒤를 돌아봤더니 나는 적중에 혼자 남아 있었다. 나는 보부상들이 밀려오는 쪽으로 가서 그들이 길을 막아놓은 작대기를 차버리고 배재학당 쪽으로 걸어갔다.


시골에서 온 보부상 장사들은 나를 누군지 알지 못했거니와 내가 그들 속을 그렇게 걸어갈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만일 남들이 달아난 쪽으로 가려고 했다면 그들이 나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 자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식할 새도 없었다. 이때도 보이지 않는 그의 손이 나를 인도해서 구원해준 것이 틀림없다. 내가 조용히 배재학당 교문으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은 내가 걸어온 인화문 쪽을 제외한 여러 방향에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김원근이 눈물을 흐리면서 저쪽 문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이승만이가 길영수에게 맞아죽었다"고 하며 통곡을 해서 내가 그의 앞에 나섰더니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모른다. 그 날 오후의 신문도 내가 길영수에게 덤벼들었다가 그들에게 맞아죽었다고 보도했다. 내가 종로 쪽으로 걸어 나갔더니 군중이 나를 따라 나왔다. 그 전에 그곳에서 공동회를 연 일이 있었다. 벌써 컴컴해지고 있었는데 내가 사람들에게 말을 했더니 그들은 내가 살아 있는 것을 알고 놀랐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상했나 보려고 나의 온몸을 만져보기도 했다. 민권운동을 지지하는 여론이 극렬해지자 무슨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 해서 근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오국사람들이 그러하였다.


고종은 안절부절 못해서 민족운동을 말소시키려고 전력을 다했다. 한강 근처에서 양쪽의 충돌이 시작됐는데 난투 중에 우리 쪽 사람 한명이 맞아죽었다. 그의 이름은 김덕구 였는데 그의 장례식은 거창하였다. 수천 명의 사람이 장례대열에 나섰다.

(역주 ㅡ 이 박사는 김덕구의 이름은 기억치 못하여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황제는 양쪽 지도자들을 불러서 인화문 앞에 즉석 알현실을 차렸다. 모든 외국 사신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황제는 왕당파 수령인 길영수와 민족파 수령인 윤치호를 불러서 정부를 개혁할 것과 우리들은 독립협회관계로 체포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했다. 그는 증인으로 외국인들을 불렀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