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태산이의 죽음

관리자
20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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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태산이의 죽음



제1고

나는 조지워싱턴대학에 등록을 했다. 한국공사관의 법률고문인 니드햄(Charles Needham)박사가 그 대학의 총장이었고 알렌 윌버(Allen Wilbur)박사가 학장이었다. 그리고 나는 [일요일마다] 각 교회에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는 1905년 3월 23일 부활절 아침에 세계를 받았다. 내가 한국에서 세례를 받지 않았던 이유는 첫째로 내가 감옥에서 나온 후에 세례를 받을 시간이 없었고, 둘째로 나는 감리교나 장로교의 어느 쪽의 친구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의 사정을 알고 있던 게일박사는 나더러 미국에 가서 세례를 받으라고 권해주었다.

(역주 ㅡ 위에서 인용한 게일씨가 햄림 목사에게 보낸 편지를 보라.)


워싱턴의 장로교회들의 주일학교들은 한국에 있는 게일박사를 후원하고 있었다. W.W.스미드(W.W.Smith)씨의 소개로 나는 각 교회의 주일학교나 청년의 모임들에 다니며 간증을 했다.


나의 아들이 왔다. 박용만씨가 그를 한국으로부터 데려왔는데 나는 필라델피아의 [어떤 가정에] 그를 맡겨야 했다. 거기서 그는 죽고 말았다.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나는 당시 조지 워싱턴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여름방학이 되자 뉴저지 주 오션 그로브(Ocean Grove, NJ)로 갔다. 아직 여름의 피서계절이 시작하기 전이었는데,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다. 길에서 만난 부인에게 호텔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겁에 질려 어떤 집을 말해주면서 " 그 집의 부인은 좋은 크리스천인데 당신을 반갑게 맞이해 줄 것이다"고 하며 그 집으로 가라고 했다. 나는 그 집을 찾아가서 스탁스(Starks)부인을 만났는데 후에 우리의 활동에 있어서 그의 우의는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역주 ㅡ 여기에 적은 일은 1905년 5월 있었던 일인데, 설명이 필요하다. 올리버 박사의 영문전기(pp.101-2)에 의하면 우남은 한국에 가있던 선교사 조지 하버 존스(George Jeber Jones)를 통해서 필라델피아에 사는 부호의 부인인 보이드(Boyd)부인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위에서 본대로 보이드 부인은 우남의 아들 태산을 양육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보이드 댁이 있는 필라델피아의 동북쪽(뉴욕시의 남쪽)의 오션 그로브는 대서양의 해안가에 있는 피서지이다. 올리버 박사에 의하면 우남은 조지워싱턴대학에 재학할 당시 여름이 되면 보이드 댁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곤 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우남이 기록한 일화는 그가 처음 여름에 그곳에 도착하였을 때의 이야기인데, 어두운 밤에 인종이 다른 남자가 길을 물으니 여인이 겁을 집어먹었을 것이다. 오션 그로브를 비롯한 미국 동해안 지역에서는 7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동양 사람을 만나기가 극히 드문 일이니 그 당시의 사정은 족히 추측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