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장관, 반기독교운동을 경계

관리자
20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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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장관, 반기독교운동을 경계


어느 날 아침 딘스모어 의원이 마차로 와서 그와 나는 국무성으로 가서 국무장관과 참으로 재미있는 면담을 반시간 남짓 가졌다. 그는 카바넨트 교회의 교인이었는데, 한국에 가 있는 선교사들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만나서 그가 처음 하는 말인즉 [서울에 가 있는] 미국공사인 알렌의사가 보고한 바에 의하면 한국의 서북지방에 가있는 미국선교사들이 피난하기를 거절했다는 것이다. 즉 러일전쟁이 시작되자 미 국무성은 위험 지역에 있는 미국시민들을 피난시키기 위해 해군함정을 평양에 파송하였는데, 그 지방에 있는 선교사들 전부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 있는 본토 교인들과 머물러 있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미국 선교사들을 사랑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경고하는 말이 "한국 사람들의 반기독교운동을 시작하지 않는 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그는 중국에서 [1900년에 있었던] 의화단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었는데 의화단은 기독교선교사들에게 반대하고 일어났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이 문을 열고 서방국가들과 교제를 시작한 후부터 한국에서는 반기독교 또는 반외국인 행동의 탓으로 선교사가 고난을 당한 일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의 대담을 끝마치면서 나는 "우리 한국사람들의 장관께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즉 당신께서 중국을 위해서 하신 것같이 한국을 위해서도 하여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물론 나는 그의 중국에 대한 문호개방정책을 가리켜 말한 것이었는데, 그는 내가 한 말에 퍽 만족을 느끼는 듯했다. [또는 기쁨을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그는 딘스모어 의원이 있는 그 자리에서 나더러 "나는 미국정부를 대표해서 나 개인의 자격으로 언제든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우리의 조약에 의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국무성을 나오면서 딘스모어 의원은 우리 면담의 결과에 대해 자기는 대단히 만족한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 면담에 관한 상세한 보고를 민공과 한장군에게 썼다. 당시 황제(고종)는 모든 일에 대해 이 두 사람을 신임하고 있었다. 딘스모어 의원은 [서울에 있는] 미국공사관에서 보내는 외교파우치를 통해 나의 보고서를 그 두 사람에게 전달하도록 알선해 주었다.

는 마지막으로 김윤정과 이야기를 나누고 민공에게 그를 대리공사로 임명하도록 노력하라는 추천문을 보냈는데, 얼마 안가서 신공사가 소환되고 김이 대리공사로 정식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당시 나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었지만 그는 비밀리에 서울에 있는 일본공사에 접근해서 일본정부가 그의 보직을 승인하도록 노력하였다는 것이 후에 일어난 일들에 의해 증명되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가 [대리공사로] 임명된 것은 우리 계획을 절반쯤은 성공케 한 것으로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