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무와 김윤정의 갈등

관리자
20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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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무와 김윤정의 갈등

(역주 ㅡ 우남은 제2고에서도 같은 시절에 관한 기록을 하고 있는데 어떤 대목에서는 똑같은 표현을 한 곳이 있으나 내용이 제1고와 많이 다르다.)


나는 섣달 그믐날 오후 7시에 워싱턴에 도착하여 곧 한국공사관을 찾아가 공사관의 서기인 홍철수씨를 만났다. 그는 민공으로 부터 나에게 모든 협조를 하여주라는 편지를 이미 받은 터였다. 그 때의 공사는 신태무였고 서기는 김윤정이었다.


신태무는 황제의 첩인 엄비가 보낸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 후에 일본 황녀와 결혼한 한국 왕자의 모친이다. 그 외에도 의화공이라고 하는 왕자가 있었는데 그는 엄비의 아들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당시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황태자(순종)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의 왕자들 중의 하나가 결국 제위를 계승하게 될 것이다. 자기 아들이 황태자가 되기를 원하는 왕비는 의화공을 헐뜯는 일에 온갖 힘을 기울였는데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신태무를 주미공사로 앉히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신태무가 한국정부의 외교대표로서 하여야 할 일은 때때로 의화공의 동정에 대해서 엄비에게 보고 하는 일이었다. [진부는 알 수 없으나] 하여튼 김윤정의 말에 의하면 그런 것이었다.


김윤정 자신도 재미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 오기 전에는 일본의 동경에서 학생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당시의 일본정부당국은 한국의 귀족들에게 그들의 자제들을 일본으로 유학 보낼 것을 권장하고 있었는데, 학우회라는 단체는 당시에 일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김씨를 포함한 4~5명의 학우회 회원들은 이 학우회의 자금 거액을 받아 가지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김씨는 워싱턴에 가서 카바넨트 장로교회의 목사인 햄린 박사를 만났는데, 햄린 박사는 김씨에게 관심을 가지고 워싱턴 시내에 있는 흑인대학인 하워드대학(Howard University)에 입학을 시켜주었다. 고등(Godon)박사가 그 대학의 총장이었다. 그리고 조지워싱턴대학의 총장은 찰스 니드햄(Charles Needham)박사였는데 그는 동시에 한국공사관의 법률고문이기도 하였다. 외교계에서 대단히 영향력이 강한 햄린 박사는 서울주재 미국공사인 알렌(Allen)의사를 통하여 한국정부에 종용하여 김윤정씨가 주미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되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의 부인과(후에「프랭크 코라」라고 작명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오게 되었다.


김씨나 홍서기관은 신공사에 대해서는 좋은 말을 일체 하지 않았다. 나는 의화공이 버지니아 주의 세일렘에 있는 로녹대학에 다니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는 때때로 워싱턴에 와서 공사관에서 머물려고 했으나 신씨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역주 ㅡ 원문에는 '나는 때때로 워싱턴에 … '로 되어 있으나 착오일 것으로 보고 여기서는 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