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비의 의친왕 감시

관리자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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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비의 의친왕 감시

(역주 ㅡ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개략'이라고 해서 시작한 제1고로 돌아가기로 하겠다.)



1904년 12월 31일 오후 9시에 나는 워싱턴에 도착했다. 그 당시에는 워싱턴 정거장이 펜실베니아가 근처에 있는 12가(12Street)에 있었다. 나의 수중에는 몇 달러밖에 나아있지 않았다. 펜실베니아가에는 마운트 버논(Mt. Venon)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호텔이 있었는데, 나는 그곳에 투숙했다. 그날 밤에는 큰 눈이 내렸다.


그 다음날 아침, 1905년 1월1일에 나는 아이오와서클(Iowa Circle)에 있는 한국공사관을 찾아갔다. 신태무씨가 공사대리로 있었는데 그이는 이은공의 어머니인 엄비가 보낸 사람이다. 이은공은 지금 일본에 살고 있다. 황실의 정적자는 민비에게서 태어난 황태자인데 실상은 저능자로 알려져 있었고 황제와 시녀의 사이에 태어난 의화공이 당시에 버지니아주의 세일럼(Salem, Virginia)에 있는 로녹 대학(Roanoke College)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왕자들 중에서 가장 어린 이은공의 모친인 엄비는 자기 아들이 언젠가 왕위를 계승할 것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신씨를 미국에 보내 의화공의 일거일동을 살펴서 자기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합중국주재 한국공사인 신씨가 하여야 할 임무는 퍽 수월하였던 것이다. 즉 의화공의 동정을 살피고 그의 비행을 가장 어린 왕자의 어머니에게 보고 하는 일이 그가 해야 할 일의 전부였던 것이다.


실상 의화공에 대해서는 보고할 일이 많이 있었다. 그는 여자들을 위해 돈을 많이 허비하고 그의 부친에게 항상 돈을 울궈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서울 주재 미국공사인 알렌 박사는 황제에게 너무 많은 돈을 보내지 말라고 충고한 일이 있다.

(역주 ㅡ 우남이 기술한 엄비와 신태무 공사와의 관계 등은 고증할 길이 없으나 의친왕(이강 = 의화공)은 1901년 3월부터 로녹 대학에 두 명의 수행원을 데리고 가서 대학근처의 사교계(특히 젊은 여성층0의 큰 화젯거리와 관심거리가 되었었다. 이정식저 '김규식의 생애'(서울, 신구문화사, 1974년간), 22면 참조, 김규식은 이 시절에 로녹 대학에 재학했고 의친왕과 퍽 가깝게 지냈다.)


홍철순과 김윤정은 서기관으로 있었다. 카바넨트 교회의 햄린(Hamlin)박사, 하워드 대학(Howard University)의 고든(Gordon)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