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츠머스 평화회의에서 의사 표명키로

관리자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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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머스 평화회의에서 의사 표명키로



나는 그날 밤을 에와에서 윤병구 목사와 같이 지냈는데 우리들은 오랫동안 비밀회의를 했다. 우리들은 일본이 한국독립의 친우라고 표방하기는 하나 벌써 그들은 한국을 파괴하고 있다는데 견해를 같이 하였다. 한국은 포츠머스서 열릴 평화회의에 참석하여야 할 것인데 일본은 한국이 정식으로 참여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따라서 해외에 있는 한국인들이 자기들의 의사를 그 회의에 표명하여야 한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런 합의하에서 윤목사는 하와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하기로 하고 나는 워싱턴에 가서 그곳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하기로 하였다.


그 다음날 아침 6시30분에 우리는 호놀룰루에 돌아가서 나의 여비를 조달하기 위한 회의를 가졌고 11시 30분에 기선 시베리아 호에 되돌아갔다. 많은 친구들의 부두에 나와서 모자와 손수건을 흔들어주었는데 나는 깊이 감동되었다.

(역주 ㅡ 올리버 박사가 우남에게 들은 얘기를 수기해 놓은 것에 의하면 11월29일 저녁 모이에는 관중이 2백 명이었는데 성찬식이 있은 후에 "나는 긴 연설을 거의 11시가지 했고 그 후에 애국가를 불렀다"고 한다. 11월30일에 우남은 호놀룰루에서 또 한 번의 연설을 했고 그 자리에서 여비 30달러를 거출했다. 시베리아 호는 11시30분에 출항했다.)


12월6일 아침 10시에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안정수씨가 우리를 마중 나와 주었는데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시내 거처에서 며칠을 지냈다.

(역주 ㅡ 올리버 박사의 수기에 의하면 이박사가 묵은 곳은 수톡턴가(401 Stockton Street)에 있는 일본인 여관인 메이지(Oisoyo and Meiji)호텔이었다. 숙박비는 더블베드에 일박 50센트 식사는 최저가 10센트)


12월9일에 안씨와 이씨와 나는 라파엘(San Rafael)에 사는 피시(Fish)부부를 방문했는데 그 부부의 아들이 한국에 선교사로 나가 있었다. 그곳에는 산 안 셀모 신학교라고 하는 장로교신학교가 있었는데 푸른 동산 꼭대기에서 있는 아름다움 석조건물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피시댁에서 하루저녁을 머물렀다. 그 신학교의 교장은 매킨토시(McIntosh)박사였는데 우리가 그에게 소개를 받자 그는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는 우리들 각자에게 수업료와 기숙사 비를 합한 3백 달러 장학금을 지급하겠으며 그 아름다운 곳에서 3년간의 공부를 끝마치면 한국에 선교사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이러한 후원에 대단한 유혹을 느꼈고 매킨토시 박사는 내가 그곳에 남아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설득을 했지만 나는 나의 비밀사명을 수행하여야 했기 때문에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12월17일에 우리는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남가주 대학(University Southern California)에 다니는 신흥우씨가 우리를 마중 나와 주었다. 그는 휴 셔만(Hugh Sherman)부인과 함께 시내 마그놀리아가(Magnolia Avenue)에서 한인 감리교 선교부(Korean Methodist Mission)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선교부에서 수일을 머물렀다.


12월26일에 나는 워싱턴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났다. 우리는 둘이 모두 갈 수 있는 여비가 없었기 때문에 이중혁씨는 로스앤젤레스에 머물기로 하고 나는 혼자 떠났다.

(역주 ㅡ 올리버 박사의 수기에 의하면 우남은 12월26일 오후 8시에 산타페열차(Sant Fe Line)로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하여 시카고에서 8시간 머문 후 12월31일 오후 7시에 워싱턴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