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학업을 계속

관리자
20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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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학업을 계속


그때부터 나는 공부에 전념하였다. 오로지 남은 하나의 희망은 한국 사람을 갱생시키는 것이고 그 길을 기독교교육이라고 나는 믿었다. 나의 인생목적은 그 일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써먹으려고 서양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 교육을 통해서 서양 책들을 한국말로 번역하기 위한 것이었다.

는 1907년 조지 워싱턴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나의 선친은 한국의 독립을 말살시키고 있던 일본사람들이 나를 다시 투옥하거나 살해할까 두려워하면 나더러 미국에 더 남이 있으면서 소원껏 공부를 하라고 강조하였다.[그래서] 하버드대학으로 가게 되었는데, [워싱턴에서 같이 지내던 교회] 친구들은 그곳에 가면 내가 신앙을 잃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하버드대학으로 가는 것을 반대했다.


내가 하버드대학에 재학하고 있을 때 [친일분자로서] 일본이 한국을 말살하기 위해서 한국정부의 고문으로 앉혀놓았던 더함 스티븐스(Durham Stevens)가 두 한국 사람에 의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암살되었다. 그는 미국에 돌아와서 일본을 위해 선전으로 하려던 참이었다. 그리고 안중근[열가]가 이등[박문]을 하얼빈에서 살해했다. [이렇게 되자] 신문에는 한국 사람들은 잔인한 살인광들이며 무지몽매해서 그들의 가장 좋은 친우인 이등과 스티븐스를 살해하였다는 기사들이 가득 실리곤 하였다. 어떤 학생들은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나의 역사학 교수는 나를 얼마나 무서워했던지 나의 석사논문을 나에게 우송해 주고는 [여름방학에 피서지로] 떠나기 전에 나를 만나 주지 않았다.


보이드 부인이 별세했다. 그의 유언과 나로부터 약속을 받아내지 못한 건.


나는 뉴욕 시내에 있는 유니온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에 기숙하면서 그곳에 등록을 했으며, 동시에 콜럼비아 대학에서 몇몇 강의를 나가고 있었다. 1908년 초가을에 장로교 선교부에서 어네스트 홀(Enest F. Hall)씨를 만났는데 그는 나더러 프린스턴으로 오라고 권유했다. 내가 뉴욕에서 살다가 프린스턴으로 가게 된 데에는 재미있는 일이 있다. 프린스턴대학에서의 생활, 윌슨(Woodrow Wilson)총장은 내가 교회나 클럽같은 곳에 다니면서 강연할 수 있도록 소개장을 써주었다. 프린스턴에는 좋은 친구가 많이 있었다. 어드맨(Erdman)박사, 대학원장 웨스트(West)박사, 총장과 대학원장간의 분쟁이 윌슨총장을 백악관으로 보냈다. 박사과정에서의 시럼들은 무척 힘들었는데, 그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내가 졸업할 때의 졸업식이 윌슨총장의 마지막 졸업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