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육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

관리자
20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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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육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즉 1911년의 일이다. 하루는 그가 나를 찾아와서 이런 말을 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단(David Star Jordan)이라고 하는 유명한 평화주의자이자 일본인의 친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프랭크는 편지를 써서 그와 면접을 청했다고 한다. 조단 박사는 조선호텔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의 일본인 안내역더러 이 젊은이를 만나겠다고 해서 프랭크는 귀국 후에 처음 미국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프랭크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방에 들어갔더니 조단박사 옆에는 일본사람이 앉아서 그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고 그는 모든 말을 듣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는 사사롭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 일본인이 말하기를 "아니오, 나는 내 앞에서 하는 당신의 말을 일체 비밀로 하겠소."하더라는 것이다. 프랭크는 정말 그를 때려눕혀서 창문 밖으로 내던지고 싶었지만 자기 자신을 진정시키느라고 혼이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프랭크, 자네는 자네 아버지가 약속했었던 대로 청원서를 국무성에 보내라고 부탁하던 때를 기억하나? 자네 어머니는 나에게 강력하게 반대했는데, 내가 자네에게 자네 부친이 자네를 노예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라고 하자 그의 대답은 "이 선생님, 저는 그때 너무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어요. 제가 그때 알았다면 아버님이 나라를 배반하지 못하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라는 것이었다. 그의 답은 나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역주 ㅡ 우남이 이처럼 포츠머스 강화회의와 연관하여 김윤정에 대해 긴 기술을 하였으나 그 후 김시의 거동에 대해 소개를 하는 것이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앞서 지적한 대로 김윤정은 광무9년(1906)에 교섭상 소홀이라는 명목으로 견책을 받았으나 다음해(1906) 8월에 태인군수(주임사 등)로 임명되었다가 동년 11월에 주임이등으로 승급되어 인천부윤 발령을 받았고 그 다음해에 고종이 양위하고 정미칠조약(한일 신조약)이 7월에 체결되어 일본이 명실 공히 한국에서의 실권을 잡자 동년 9월에 훈사 등으로 승격하여 태극장을 받았고 11월에는 일본국훈사등서보장을 받았으며 수일 후에는 또 정삼품으로 승위 되었다. (전게 '대한제국관원이력서' 155면) 그 후에도 그의 관운은 융융하여 전라북도 참여관(고등관삼 등) 도지사를 거쳐 종삼위훈이등 조선총독부중추원참의로서 일본인에 의하면 "조선통치를 위해 공헌하는 바가 심대하였다"(전게 '조선공로자명감' 350면) 윤병규, 이승만 양인이 청원서를 강화회의에 제출하였다 해도 일본 측은 그것을 묵살했을 것이고 한국의 독립이 보장되었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제출은 상징적으로 좀 더 큰 결과를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다.)


후에 민공은 윤목사와 나의 노고를 치하하고 감사하는 글을 보내왔다. 황제가 비밀경로를 통해 우리의 독립운동을 위한 기부금을 보낼 것을 약속했다고 했는데 나는 그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때 난생 처음으로 정말 설기되었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의 윤리상태가 얼마나 땅에 떨어진 것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김윤정은 한국사람 중의 좋은 예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떻게 한국 사람이 저렇게 자기 나라를 배반하고 자기 친구들을 배반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그처럼 짐승 같은 저역상태에 빠져있는 한 한국에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한국 사람들에게 기독교교육을 베풀기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작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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