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프트 미 육군 장관의 호의

관리자
20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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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프트 미 육군 장관의 호의


제2고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이 끝나자 뉴햄프셔 주의 포츠머스에서 7월초 강화회의가 공표되었는데, 한국의 황제도 그렇고 한국정부도 공식대표를 그 회의에 파송할 수가 없었다. 한국 사람들은 사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육군 장관 윌리엄 태프트는 [대통령의 영애 앨리스 루즈벨트와 워즈워스(James W.Wadsworth)의원을 수반하고 동양방문의 길에 나섰는데, 그들은 도중에 호놀룰루에 들렀다. [이 기회를 타서]그곳 한국 사람들은 군중대회를 성대하게 열고 1882년에 체결한[한미]조약에 근거해서 데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러일 강화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알선해 주도록 요청하는 청원서를 8천명 하와이 군도 在住한국인들을 대표하여 채택하고 윤목사와 내가 그 청원서를 대통령에게 전달할 사절로 선출되었다. 이 소식은 곧 전국의 신문사들에게 발신되었다. 호놀룰루의 한인 선교부를 책임 맡고 있던 와드맨 박사가 태프트 장관에게 접촉하여 대통령에게 보내는 소개장을 받았다. 태프트장관은 한국 사람들에 대해 대단히 동정적이었다. 그 소개장은 절대적으로 비밀리에 취급되어야 한다는 조건하에 얻은 것인데, 나는 아직도 우리가 그 소개장에 무엇이라고 씌여 있었는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하여튼 그 편지는 오이스타 베이(데어도어 루즈벨트의 별당)에서 우리의 길을 열어 주었다.


윤씨가 워싱턴에 도착하자 우리는 서재필박사와 함께 청원서를 작성하여 대통령이 피서하고 있는 오이스타 베이에 있는 사가모어 힐(Sagamore Hill)을 찾아갔다. 신문기자들은 우리들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우리들 동정의 일거일동을 신문에 보도하였다.


우리는 7월5일 오이스타 베이에 도착하여 옥타곤 호텔에 잠간 머물었는데, 신문기자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질문을 했으나 우리는 대통령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제출하기까지는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더러 지금 대통령은 너무 바빠서 우리들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는 러시아대표단과 일본대표단이 [강화회의를 위해] 도착하고 있을 때였다. "대통령은 지금 당신들을 만날 시간이 없으니 당신들은 여기서 몇주일을 있어 보아도 성과가 없을 것이다"하고 하며 우리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좌절시키려고 했다.


우리는[대통령 비서]로에브씨에게 가서 우리의 청원서와 태프트 장관의 소개장을 제출했다. 그는 그 문서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는 하겠으나 대통령이 대단히 분주하니 그리 빨리 회답이 올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호텔에 가 있었는데, 저녁에 로에브씨가 전화를 걸어 다음날 아침 9시에 하계 백악관으로 오라고 했다. 그러자 신문기자들이 몰려와서 우리를 축하하고 우리가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무슨 일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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