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부인할 수 없는 만행에 대해 그 의미와 가치를 설명해 주십시오.

정영훈
2019-03-16 20:31
조회수 147

이영훈교수님과 여러 교수님들의 깊이있는 열강으로 우리 역사에 대해 무지를 근본부터 깨우치게 되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최근 끝을 맺은 이교수님의 반일 종족주의 강연청취를 마무리하면서 저는 객관적으로 알려진, 지나칠 수 없는 일제의 만행도 열강의 세계사적인 보편적이고 불가피한 강제와  전횡으로만 우리가 수용하고 이해해야 되는지에 대해 강한 회의를 갖게 됐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명쾌한 사실규명과 평가가  있어야만 이승만학당의 기존 강연들이 보다 더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강의로 자리매김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제는 일국의 황후인 명성황후를 조선에 파견한 외교관들을 지휘하여 음성적으로 동원한 자객들을 동원해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는 조선총독부 청사를 한 나라의 정궁인 경복궁을 헐고 지었습니다. 일제는 조선왕실의 정기를 파괴하는 차원에서 창덕궁의 일부를 헐어 동물원으로 조성했습니다. 이교수님과 여러 교수님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일제가 한국을 정상적으로 병합하기 위해 신사적으로, 토지를 등록받아 소유권을 전면 인정해 주고, 식량을 정상적인 시장가격으로 구매해 반출했으며,  창씨개명을 자발적으로 유도했고, 징용자, 위안부, 참전자들을 정상적인 공모절차와 지원을 받아 계약관계로 동원했다면, 왜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이 보였던 것과는 다른 학살에 버금가는 사변들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해 주어야한다고 생각됩니다. 영국은 청을 제압하는데 국가상징인 자금성을 허물지 않았고, 인도를 침략하며 타지마할을 허물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 미국은 일제의 항복 전후에도 일본황실을 손상하거나 처형하지 않았는데  고종, 순종의 독살설이 일제의 짓이라는 것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도 부인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덕혜옹주의 비극적인 환국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설명이 있어야만 이승만TV의 주장들이 정의로운 주장들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고견을 들려 주시기를 앙망합니다.  

정영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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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임을 왜 여기다 물어?
존경하는 정영훈 형제님의 질문에 대한 필자의 졸견입니다. 부디 너그럽게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1.
일본 지도층은 항상 1) 조선반도를 자기 조상들이 살았던 땅이라고 생각했고, 2) 조선인을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해 왔고, 3) 기회가 있다면 조선을 회복(침략, 통합)하고자 염원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사람들이 건너가는 것은 자연스럽죠. 일본 고대사에 의하면, 조선반도에서 일본으로 여러 차례 대거 이주가 있었습니다. 도래인이라고 하죠. 그리고 일본국은 백제왕실이 건설했습니다. 가야와 백제가 패망할 때에도 대규모 이주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일본인은 조선반도 쪽을 바라보면서 절을 한다든지, 염원을 한다는지 하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풍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일합방 당시에 1) 전 세계적으로 열강이 식민지를 쟁탈하던 상황이었고, 2) 조선이, 남하하는 북방세력(러시아)을 막아내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므로, 3) 일본이 자국의 방위를 위해서, 그들 입장에서는, 조선을 침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일제는 조선반도를 침략하여 회복하고, 조선인을 일본인과 통합하고자 했다고 생각됩니다. (동조동근, 내선일체) 이게 당시 일제의 목표였고, 일단 그들로서는 자연스럽다고 생각됩니다.


2.
목표가 설정되었으면, 이제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데요, 1) 조선반도와 조선왕국을 접수하는 방식으로는, 국제사회의 눈치를 의식해서, 또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최대한 적법한 절차 혹은 평화적인 방식을 취하되, 불가피한 경우에는 과감하게 비상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고,

2) 조선인을 일본인과 통합하기 위해서는 조선인의 마음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예의를 지키고, 합리적 목표를 설정하고, 합리적 절차를 따르기로 하되, 불가피한 경우는 과감하게 비상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사료됩니다.

실은 1), 2) 모두, 그 내용이 같습니다. 평화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도록 노력하되, 안되면 폭력을 사용한다. 자연스럽죠.

이상 저의 상상입니다만, 이와 같은 태도는 일본 지도자들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매우 합리적인 태도라고 생각되고,

이와 같은 기준으로 한국과 중국에서 일제가 취했던 태도들을 살펴보면, 일제가 취한 조치들 모두가 적어도 그들 입장에서는 타당한 것으로 혹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가 된다고, 생각됩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납득이 된다는 것입니다.


3.
조선반도와 조선왕국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일제는 국제법을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적어도 그런 외관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에, 과감한 비상조치를 취했습니다.
민비 살해가 바로 그 예였다고 사료됩니다.


4.
일제가 경복궁을 헐고 총독부 청사를 짓고, 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든 것과 같은 행위는, 그것이 결과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로서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그럴 수도 있는 조치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조선 백성들이 조선 왕조에 대해서 잊어주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래야 통합이 되죠. 그런데 왕궁은 왕실의 상징이지요. 그래서 허물었다고 사료됩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그런데 영국이 중국의 황궁을 허물지 않고, 미국이 일본의 황궁을 허물지 않았던 것은? 영국이나 미국은 중국인이나 일본인을 자국과 통합 혹은 동화 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생김과 언어와 문화가 현격하게 달라서, 또 현실적인 필요도 없어서,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굳이 궁을 허물 이유가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일본이 경복궁을 허문 것에 분노하지만, 당시 일본 그들 입장에서는 진정으로 당시 조선인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것 때문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근래에 중국이 만주의 조선 문화를 말살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조선인을 중국에 통합하려는 노력이라고 하겠습니다.


5.
일제가 한일합방 후에 조선인을 일본열도의 자국민과 대등하게 대우한 것은, 그들이 조선인을 일본인과 진정으로 통합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대등하게 대우해야만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에는 과감하게 비상조치를 취해야 했겠죠. 그게 바로 독립운동을 무력으로 탄압한 것입니다. 독립군 입장에서는 분개하겠으나, 당시 일제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었지요.

(여담인데요, 당시에 실제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무시해도 좋을 만한 극소수였고, 절대 다수 조선인은 일제에 잘 순응하며 잘 살았던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백성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지배자 아래서든,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할 의무와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타인의 삶에 대해서 친일이니 뭐니 비판하는 것은 어떤 근거도, 권한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친일파 운운하는 자들은, 당시에 주어진 환경에서 정당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았던 자신들의 조상들의 삶에 침을 뱉고 있는 것입니다. 곧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죠.)

일제는 중국에도 침략했는데, 중국에서는 잔인하게 살육도 했습니다. 조선에서의 태도와 일관되지 않죠? 무사사회의 전통을 가진 일본군이, 목숨을 걸고 중국 대륙에 출정했습니다. 동족의식도 없었고, 통합계획도 없었습니다. 전쟁이란 워낙 살육과 약탈과 겁탈입니다. 그렇다면, 물론 좋은 일은 아니나, 당시 그들 입장에서는 그런 잔인한 행위를 저지를 수는 있다고 사료됩니다.

오늘 우리는 일제 당시를, 오늘날의 인권기준으로 평가하는데요, 당시는 오히려 조선시대 동북아의 윤리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인권은 없었습니다. 적군은 죽여 코나 귀를 베어가고, 부녀자는 겁탈하고, 재물은 빼앗고, 포로는 코를 꿰어 끌어가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에 청군이 그랬습니다. 임란 당시만 해도 왜군은 조선군의 코를 베어갔습니다. 조선왕조와 탐관오리들은 백성을 노예로 부렸습니다. 당시, 야만에서 문명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있었던 일제가 조선인에 대해 취한 태도는 특별히 자비로왔다고 사료됩니다.


6.
그런데 당시에 일제가 패망하자 모든 조선인들이 만세를 불렀다고 합니다. 조선인들이 일제에 순응하며 잘 살았다면, 일제가 망할 때에 왜 만세를 불렀을까요?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고, 얼마 있다가 곧 태평양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물론 돌이켜 보면 일제는, 미국을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전세계적으로 식민지 쟁탈전이 극에 달했던 때입니다. 동북아는 전쟁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있었고, 다행스럽게 조선반도는 이 전쟁에는 끼어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국민과 국가의 자산이 총동원됩니다. 당연하죠. 그래서 조선인들과 조선인들이 가지고 있던 쇠붙이 등도 동원된 것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모든 백성과 물자가 동원되었습니다. 6.25 당시에도 모든 국민과 물자가 동원되었습니다. 똑 같은 이치입니다. 당시 태평양전쟁을 맞아, 일제는, “조선인과 조선에 있는 물자를 포함한” 일제의 모든 것을 당연히 동원해야 했고, 동원한 것입니다. 일제의 국민인 조선인도 당연히 동원에 응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일제의 국민인 조선인이, 징용을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은, 6.25에 징집된 대한국민 국민이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과 실은 이치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하튼 전쟁은 너무나도 힘든 것이죠. 잔인하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이 전쟁에 자신들을 몰아넣는 자들이 일본인이거든요. (일제가 아니었다면 다른 누군가가 조선 백성들을 전쟁에 몰아넣었겠죠. 그런데 사람들의 머리 속에 그런 생각은 들지 않죠.) 그러니까,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원망하게 되죠. 밉죠. 그러다가 종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살았구나 하고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만세”는 실은 잔인하고 고달픈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 만세”였다고 생각됩니다. 전쟁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7.
맨 앞에서 필자는 당시 일제가 설정한 목표와 목표달성을 위해 채택한 방침을 상상해 보고, 그것이 당시 그들에게는 합리적이었거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그리고 그런 기준에 따라, 일제가 행한 이런 저런 행위들을 해석해보면 모두 자연스럽게 이해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영훈 교수님 등 이승만 학당의 교수님들께서 가르쳐 주신 일제 당시의 진실, 곧 일제의 나름 합리적인 태도들은 일제가 한국을 다루는 기본방침이었고, 일제의 민비살해, 경복궁 파괴, 창경궁 파괴, 독립군 살해 등은 그들의 입장에서 불가피하다고 생각해서 취했던 비상조치였다고 사료됩니다.

존경하는 정영훈 형제님의 질문에 대해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8.
여담인데요, 오늘의 한국인은, 1) 조선왕조의 다수 백성들은 노예나 다름없었는데, 자신의 조상들이 양반으로 살았던 것으로 착각하고, 조선왕조의 가혹했던 학정은 외면하고, 애써 미화하고,

2) 거의 모든 왕조교체에는 워낙 권력층에 피바람이 부는 것인데, 아무 일도 없었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3) 소위 독립운동가들의 저항은 일제에게는 반역인데, 반역에는 죽음뿐이다는 평범한 이치를 인정하지 않고, 도덕을 적용하고, 4) 독립운동가들의 수와 활동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지극히 작은 것이었음에도, 많은 조선인들이 독립을 희망하고 활동했던 것처럼 착각하고,

5) 일제가 조선 백성 절대 다수에 대해 나름 합리적으로 대우했던 사실은 잊어버리고, 6) 그래서 절대다수 조선인들이 일제에 순응해서, 일제를 자기 나라로 여기고, 열심히 살았던 사실을 외면하고, 7) 남의 나라인 일제에 의해, 태평양전쟁 과정에서 부당하게 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8) 일제시대의 자기 조상들의 정당한 삶을 친일이다고 모욕하고 있다고 사료됩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요? 1) 조선 말기에 왕가의 일족으로서 호의호식하였는데, 2) 일제에 의해 왕권을 빼앗겨, 자신의 권위와 부가 사라지고, 3) 시종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4) 남의 나라인 일제에 의해 전장에 끌려가서 죽을 고생을 했다는 사람으로 추론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아무도 없죠. 그런데 지금 상당수의 백성들이 이런 환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9.
그래서 필자는, 역사를 누구의 시각에서 바라보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합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마치 주인공인 것으로 착각하거든요. 그래서 역사를 읽을 때에도 고종이나 민비가 자기 자신인 것으로 착각하거든요. 그러나 영화가 끝나면 썰렁한 현실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 하나하나를, 왕이나 왕가의 맹목적 추종자의 입장에서가 아닌, 혹은 특이한 독립운동가의 시각에서가 아닌, 절대다수 평범한 백성들의 처지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건 하나하나가 백성들에게, 절대다수 서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래서 조선 말기에, 백성들의 삶은 행복했는가? 조선이 무너지고 한일합방이 되어 행복했던 백성들의 삶이 파괴되었는가? 일제는 절대다수 조선인을 어떻게 대우했는가? 일제가 물러가니 천국이 왔는가?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