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림도 검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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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나라 일을 맡은 사람이 자기 집을 고치면 그런 데서 부정부패가 싹트게 된다고 하여 이화장은 물론 경무대도 지붕 새는 것을 수리하는 일 외에는 손을 못 대게 했다. 이승만은 일본식인 경무대의 방들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경비 절약을 위해 일제시대에 만든 다다미방조차 개조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이승만은 자신만 검소한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나라살림도 검소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백두진이 재무부장관 시절 정부 예산안을 편성할 때 국회 심의보다 이 대통령의 결재를 받는 것이 더 까다로웠다고 한다. 백두진의 회고다.

‘어느 날 이 박사 주재로 예산 관계 회의를 할 때였다. 묵묵히 설명을 듣고 있던 이 박사가 “잠깐, 그 공사에 1억 원이 든다고 했는데, 자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나?” 하고 묻는 것이었다. 담당자는 그건 시멘트가 몇 부대, 철근이 얼마, 노임이 얼마, 무엇이 얼마가 드니 1억 원이 나오는 것이라 대답했다. 이 박사는 책상을 탁 치며 “그걸 아니까 그렇게 비싸게 들지. 자넨 그걸 몰라야 해. 무조건 정부는 이런 이런 공사를 하니 할 사람은 나오라고 큼직하게 써 붙여. 싼 시멘트나 철근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고, 싼 노임으로 사람을 쓰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야. 이걸 미리 얼마가 든다고 예산에 딱 박아놓으니까 비싼 공사를 하게 되는 거야” 하는 것이었다. 이 박사가 1951년 여름 정부기관에 경쟁 입찰제의 실시를 명령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승만 시절 국회 재경위원장을 지낸 이재형은 1952년 총예산 심의 때 정부 일반경비 중 국방부의 서무비를 대폭 삭감했는데, 이 대통령은 민복기 비서관을 이재형 위원장에게 보내 “정부 재정 절약을 위해 국회에서 많은 수고를 해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