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미장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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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0월 16일, 33년 만에 귀국한 이승만은 미군정 사령관 하지 장군이 마련해준 조선호텔에 잠시 머물다가 10월 24일 서울 동소문동 4가 103번지, 조선타이어 사장이었던 장진영의 집을 빌려 2년 여 생활했는데, 이것이 돈암장이다.

이승만 박사와 미군정이 신탁통치 문제로 불편한 관계가 되자 입장이 난처해진 집주인 장진영이 집을 비워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승만의 거처가 마땅치 않자 하지 장군이 마포 언덕 위에 위치한 다나카 다케오(田中武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의 여름 별장을 주선해 주었는데, 이것이 마포장이다.

마포장은 집이 협소하고 교통이 불편한데다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어 수돗물도 잘 나오지 않고 강바람이 세찼다. 이승만은 문짝이 잘 맞지 않고 공사해 놓은 것이 날림인 것을 보고 혀를 차며 “내가 한 것만도 못 하구만. 저 밖에 있는 나무 궤짝 좀 끌르게” 하고 윤석오 비서에게 지시했다.

그 궤짝에는 이승만이 미국에서 쓰던 대패, 톱, 끌, 망치, 칼 등 연장이 가득했다. 작업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이승만은 대패를 망치로 톡톡 쳐 맞췄다. 맞지 않는 문짝을 떼 자로 대어 줄을 긋고 대패질을 한 뒤 문 손잡이를 분해하여 고쳤다. 솜씨나 태도가 완전히 전문가였다.

윤석오 비서가 “선생님, 미국서 목수노릇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내가 하와이에서 교포학교 지을 때 목수 일도 하고 돌층계도 쌓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매일 부지런히 정원수를 다듬고 고목나무는 잘라 도끼질을 했다. 1년 이상 손을 안대 무성한 정원의 풀은 아무도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도록 엄명을 내렸다.

이 무성한 풀은 점심 식사 후 약 반시간씩 손으로 뽑아 한 달 만에 다 없애 버렸다. 이승만은 풀을 뽑으면서 외부인사 접견도 하고 비서들에게 성명을 구술하기도 했다. 풀이 억셀 때는 두 손에 힘을 주어 잡아 뽑으며 “이놈, 나한테 졌지, 졌어” 하는 혼잣말을 자주했다.

윤치영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과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활동하던 시절, 두 사람은 일당 1달러 50센트를 받고 농장에서 교민들과 함께 노동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이승만은 농사뿐만 아니라 어디서 익혔는지는 몰라도 목수 일, 미장이 일까지 못하는 일이 없었고, 솜씨도 대단해 모두가 감탄했다.

마포장은 여름 별장으로 쓰던 곳이라 바람이 심하고 추운 겨울을 지내기 쉽지 않았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방에서도 외투를 입어야할 정도였다. 이승만이 집 때문에 고생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실업인 30여 명이 모금을 하여 종로구 이화동 1번지 낙산 아래 저택 이화장을 구입했다. 이승만은 이화장에서 대한민국 초대 내각을 조각했고, 정부 출범 직후인 1948년 8월 18일 하지 장군의 관저로 사용되던 경무대(景武臺)로 거처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