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MIT’ 인하공대를 설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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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29일 새벽, 이승만 대통령 내외는 이화장 근무 직원들에게 “돌아올 때까지 집을 잘 보라”는 말을 남기고 이화장을 떠나 호놀룰루로 갔다. 당시 미국 신문에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하와이에 올 때 17만 달러를 가져왔다는 오보가 실리는 바람에 호놀룰루 공항 세관에서 철저한 세관 검색을 받았다. 세관 직원이 프란체스카 여사의 가방을 열자 달러는 고사하고 헌 옷가지 몇 점이 나왔다. 이승만 내외는 교포인 윌버트 최가 마련한 별장에 잠시 머물다 마카키 스트리트 2033번지의 침실 하나에 부엌만 있는 작은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와이 릴리하 거리에서 자동차로 20여 분 정도 떨어진 칼리히 엘리멘터리 스쿨(초등학교)은 1913년 이승만 대통령이 학장을 맡았던 한인기독학원이 위치했던 곳이다. 과거의 한인기독학원 건물은 헐리고 그 자리에 깔끔한 흰색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승만 박사는 6·25 전쟁이 종전으로 치닫던 1952년 12월 “전쟁이 끝나고 전후복구를 위해서는 기술자 양성이 필요하다”면서 하와이에 연락하여 한인기독학원 건물과 부지를 매각하여 그 돈을 한국으로 보내라고 요청했다. 하와이 교민들은 이 건물 매각대금 및 성금을 모금하여 본국에 보냈는데, 이 자금이 인하공대(오늘날의 인하대) 설립의 종자돈으로 사용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 체류 시절 설립한 동지회의 사무실 건물인 ‘동지회관’도 매각하여 절반은 인하공대 설립자금으로, 나머지는 동지회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활용됐다. 호놀룰루 시 킹 스트리트에 위치한 동지회관 건물은 2층으로 된 일자형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남의 손에 넘어가 싸구려 제품들을 파는 상가로 변했다. 동지회는 이승만이 1921년 설립한 단체로서, 이 박사는 이 단체를 중심으로 독립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를 비롯한 애국단체 지원 사업을 전개했다.

1954년 개교한 인하공대란 교명은 인천과 하와이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인하공대를 설립하면서 이 학교가 한국의 MIT 같은 훌륭한 학교로 성장하기를 꿈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