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살 돈 없어 온실 화초 팔아 쌀 구입

조회수 1360

이화장의 이승만 박사

쌀 살 돈 없어 온실 화초 팔아 쌀 구입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던 날 경무대 근무 직원들은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이 대통령 내외가 이화장으로 돌아왔을 때 난방용 기름이 없어 총무처에 기름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쌀을 살 돈이 없어 온실의 화초를 팔아 쌀을 구입했다. 경무대 내실 근무자였던 방재옥 씨는 대통령께서 돈이 없어서 우리들에게 월급을 못 주실 거라는 걸 알았지만 두 분을 너무 존경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모두 이화장까지 따라가 근무를 했다.

이화장 본채는 그 동안 손을 보지 않아 엉망이었다. 마루에는 먼지가 쌓여 실내화를 신지 않고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전력은 약하고 스팀도 들어오지 않을 뿐더러 수세식 변소마저 쓸 수 없어 불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벤치와 곰팡이 핀 등의자 외에는 의자조차 쓸 만한 것이 없어 실내에서는 의자생활을 하지 못했다. 손을 보지 않아 정원의 나무가 제멋대로 자라 이승만은 하야하는 날부터 전지와 정원 가꾸기로 소일했다.

이화장으로 돌아간 이승만 박사는 4·19의 충격으로 건강이 눈에 보이게 악화되었다. 하야를 전후하여 자주 설사를 했고, 이화장에 와서도 평소처럼 아침저녁 산책과 정원손질을 계속했지만 혼자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야 때 아무 준비 없이 나왔기 때문에 생활비도 넉넉지 못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 후 여러 외국 원수로부터 위로 서한을 받았다. 특히 장제스 자유중국 총통은 주한 대사를 이화장에 보내 위로 친서를 전달해왔다.

대통령 내외는 5월 29일 상오 8시 45분 김포공항을 떠났다. 측근 비서들에게조차 떠나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그 전날까지 장화를 신고 삽으로 도랑을 친 것이나 사랑하던 애견 해피까지 두고 간 것을 보면 돌아올 생각으로 간 것이 분명했다.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하와이로 떠난 후 경찰서에서 나와 가재도구에 딱지를 붙이고 물건을 실어 갔다. 모두들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며 울었다. 짐을 실어 내가고 폐가처럼 되어버린 이화장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다 뿔뿔이 흩어졌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서거한 후 거처할 곳이 없어 친정인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갔다가 이화장으로 돌아왔다. 이화장에 에어컨이 없다는 말을 듣고 1976년 금성사에서 에어컨을 기증했는데 프란체스카 여사는 “전력난이 심한데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다”면서 돌려보냈다. 그 대신 금성사가 조그만 선풍기를 보냈는데, 이마저도 여름 한 철에 한두 차례만 사용해 지금도 이화장에 새 것처럼 보관되어 있다. 이화장에서 쓰던 냉장고는 1949년 타이완의 장제스 총통이 방한했을 때 마련한 것으로, 35년 동안 사용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육영수 여사의 장례식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본 후 가족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꽃은 사용하지 마라. 그게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비싼가. 쓸데없는 곳에 돈 쓰는 것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훨씬 낫다.”

이승만 대통령 내외는 왜 그렇게 평생을 철저한 구두쇠 생활로 일관했을까. 프란체스카 여사는 며느리 조혜자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가 북한 동포를 위해 근검절약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무리 강대국들이라도 우리를 함부로 업신여기지 못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