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결혼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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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우리 국군이 북진을 개시한 10월 1일, 프란체스카 여사는 외국으로 보낼 전문과 편지들을 타이핑하느라 정신없이 일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창밖에서 장미 한 송이가 휙 하고 날아와 여사가 작업하던 타이프라이터 위에 떨어졌다. 깜짝 놀란 여사가 창밖을 내다보니 남편 이승만이 저편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당시 상황을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다. 이 와중에도 잊지 않고 한 송이 꽃을 던져주는 대통령의 포근한 마음에 나는 행복감에 젖었다. 16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통해 대통령은 나에게 단 한 번도 돈을 주고 산 선물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한 송이 꽃이나 한 개의 사과 같은 것을 주더라도 그 때마다 방법이 신기롭고 걸맞아 나를 한없이 즐겁게 해주곤 했다.

나와 결혼할 당시만 해도 한국의 민족지도자가 서양 여자와 결혼한다는데 대해 독립 운동하던 동지들이나 대통령을 지지하던 동포들에겐 실망과 반발이 대단했다. 설상가상으로 신랑의 호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결혼비용은 모두 신부인 내가 부담했고, 심지어 결혼반지도 친정 식구들이 알았다면 기절하겠지만 내 돈으로 샀다.’

이승만 대통령은 부인을 위해 한국 이름을 하나 지어주었다. 이부란(李富蘭)이란 이름은 별로 쓰이지 않아 널리 알져지지 않은 프란체스카 여사의 한국식 이름이다. 이 이름은 6·25 전에 작명됐다. 마담은 서양식으로 남편의 성을 취해 이프란체스카로 이름을 표기했는데 우리 글로 쓰니 너무 길다 해서 한국 이름을 지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어느 날 대통령이 공보비서이던 김광섭 씨를 불렀다. 그 자리에서 이 박사는 마담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지어야겠다는 얘기를 꺼냈다.

“옛 부터 이름 잘 짓는 사람이 있지.”

“예, 작명가란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이름을 잘 짓나.”

“보통 작명가에게 부탁할 수는 없고 동양화가로 고희동이란 분이 이름을 잘 짓는다고 합니다.”

이래서 고 씨에게 마담의 작명이 부탁됐다. 고 씨는 프란체스카란 음을 살려 이부란이란 이름을 지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