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지에서 만난 14세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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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임시수도 시절 우리 군․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중공 비밀공작원들을 체포한 적이 있다. 그들은 대통령과 국방장관을 암살하려고 부산에 왔다고 실토했다. 당시 부산 대통령 관저의 목책은 꼬마친구들이 넘어올 정도로 허술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힘들이지 않고 관저 안으로 숨어들기 좋게 되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이 거처하는 관저의 떨어진 방바닥은 물론 문창호지도 바꾸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창문의 틈과 문짝도 자신이 직접 연장을 들고 고쳤고, 관저 경호도 돈 드는 일은 못하게 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종공의 암살 공작원들이 대통령의 생명을 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경호경관 수를 줄여 한 명이라도 더 전투경찰로 내보내 싸우게 할 궁리만 했다.

1951년 1월 29일, 1‧4 후퇴로 수도를 다시 부산으로 옮겼을 때의 일이다. 이승만 대통령 내외는 오후 늦게 관저 뒷산을 산책하다가 남루한 옷을 입은 14살짜리 동네 소년을 만났다. 이승만은 이 소년과 친해져서 그의 집까지 따라가 그의 가족을 방문했다. 이승만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형이 전선에 나가 싸우고 있기 때문에 정영석이라는 이 어린 소년이 담배장사를 해서 벌어오는 돈으로 가족의 끼니를 이어가는 딱한 사정을 알게 됐다.

이승만은 이 총명한 아이가 우선 학교에 나가 공부할 수 있도록 금일봉을 주고 대통령 관저에 자주 놀러오도록 여러 번 당부하고 돌아왔다. 이승만이 남달리 이 소년에게 애착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이 독립운동을 하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해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병원에서 전염병에 걸려 외로이 죽은 아들이 14살이었기 때문이었다.

6대 독자였던 이승만은 자신이 혈육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아이를 잃은 것에 대한 애착 때문인지 유독 아이들을 사랑했다. 1951년 2월 2일 부산 임시수도 시절의 일이다. 미주 동지회에서 이승만을 도와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염선호 씨의 향리인 함양 운공리 해평마을 염 선비 댁에서 대통령에게 곶감 꾸러미를 보내왔다. 이승만은 이 곶감 선물을 받고 무척 기뻐했다.

이승만이 곶감 선물을 반긴 이유는 동네의 개구쟁이 친구들이 관저 나무울타리나 기둥나무 뒤에서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5시쯤 대통령이 정원 산책 나오기를 기다려 목책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숨었다 하는 이 꼬마 친구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곶감이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 꼬마 친구들이 대통령에겐 업히기도 하고 신이 나서 매달리며 좋아하지만, 내 초록색 눈과 오똑한 코가 두려움을 갖게 하는지 나만 보면 질겁하고 모두 달아나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