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남은 여비 반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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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은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다. 83세 때인 1958년 9월 북한산 문수사까지 걸어 올라가 휘호를 써 주었다. 이승만은 미식가였고 독서가였으며 낚시, 테니스, 정원 손질, 서도(書道)를 즐겼다. 대통령은 가볍고 규칙적인 운동과 담배와 술을 금하고 검소하고 간단한 식사를 통해 건강을 유지했다. 저녁 예배를 마친 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매일 오후 5시 이후가 되면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 대통령을 모시고 경무대 뒷산을 함께 산책하곤 했다. 비가 오면 마담이 우산을 손수 받쳐 들고 부부가 함께 산책을 했다. 일 때문에 밖으로 출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일 한 시간씩 규칙적으로 산책했다. 산책을 하다가 삭은 나무 가지를 잘라내고 썩은 고목 덩굴을 도끼질 하든가 톱질을 했다.

이원장 전 육군소장(후에 국회의원 역임)은 연합참모본부(합동참모본부의 전신) 창설요원으로 경무대 별관에 근무하는 과정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볼 기회가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이승만이 스웨터만 걸치고 경호원 몇 사람과 함께 톱과 도끼를 가지고 별관 옆에 쌓인 나무토막을 자르고 도끼질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런데 스웨터와 바지의 여러 군데가 깁고 꿰매져 있었다고 한다.

이승만은 달러를 대단히 아껴 도미(渡美) 유학을 다녀온 장교단이 귀국하면 경무대에서 쓰고 남은 여비를 반납하라는 통지서를 보내곤 했다. 이원장 장군의 회고다.

‘어느 날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경무대에 급히 불려갔다. 비서의 안내로 프란체스카 여사님을 만나 뵌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오래 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수수한 옷차림으로 친절히 맞아주시는 여사님은 자리를 권하시면서 두툼한 서류를 내놓으셨다. 바로 도미 유학 장교단의 여비 청구서였다.

내 소관은 아니었지만, 말씀인즉 여비가 1.3배나 과당 청구되었으니 다시 검토해보자면서 미국 관광안내서를 펴 보이셨다. 그리고는 일일이 헌 편지봉투를 뒤집은 종이 위에 계산하며 설명하시는 것이었다. 끝으로 우리가 돈 한 푼, 물건 하나 절약하는 것도 애국하는 일 아니냐면서 오해 말아달라고 하실 때, 나는 순간 감전이나 된 듯 몸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