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제자리 찾기 프로젝트 :  이승만에 드리워진  누명과 진실

대한민국을 건국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 그는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시대에 자유민주주의에 길이 있음을 내다 보았습니다

탈북자가 본 건국대통령 이승만(이애란)

관리자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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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가 본 우남 이승만과 통일


자유통일문화원 원장 이애란



해방 후 7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북한은 조선왕조를 답습한 아주 특이한 형태의 공산왕조를 수립하였고 나라가 도탄에 들어 수백만명이 굶어죽었어도 전국 도처에 김일성동상과 김정일 동상은 나날이 늘어가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으며, 세상에 유례없는 3대 세습에 성공해 철부지 어린이에 불과한 김정은을 최고지도자로 내세웠고, 그 결과는 무차별적이고 야만적인 공개처형과 단오날 널뛰기 같은 숙청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6년 새해 벽두부터 북한은 제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고 이로 인해 한반도에는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김정은의 경거망동이 미국도 자극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핵전쟁의 불안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3월 2일 유엔 대북제재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고 김정은 정권에 대한 전면적인 경제제재조치가 취해지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개성공단전면중단에 이어 십수년 만에 북한 인권결의안과 테러방지법이 통과됨으로써 북한의 인권탄압에 대한 압박과 경제제재가 한층 강화되었다. 김정은은 국제사회와 한국정부의 대응에 맞서 또다시 단거리 미사일발사를 감행했고, 날마다 한국정부와 미국을 공갈 협박하는 망언을 일삼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북한의 핵문제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의해 시도되었고 추진된 것이며, 북한의 왕조체제가 대를 이어가며 세습되듯이 핵과 미사일개발 등 군사적 도발도 대를 이어가며 세습되고 계승되어야 할 중차대한 문제로써, 김일성왕조를 지켜내기 위한 생존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핵 포기와 군사적 도발을 포기시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어떤 노력도 김정은 3대 세습정권이 교체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다시 말하여 핵과 미사일은 김정은 정권의 운명을 좌우하는 생존권이자 권력유지 수단으로써, 김일성과 김정일은 물론이고 김정은도 선대수령들의 유훈인 핵개발과 장거리 미사일개발 등 강력한 군사무기를 개발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정부는 그동안 북한을 위해 다양한 통일제안과 함께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 정권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해왔으며, 심지어 대한민국의 중요한 인사권까지도 김정일에게 양보하면서 통일을 추진했고 어느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김정일과 핵문제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면서 두둔했다고 고백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북한 깡패정권에 국민의 세금을 퍼다 주고 북한정권의 비위를 맞추어가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손상시키면서 굽실거리는 것이 통일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많은 정치인들과 민간통일운동가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북한의 김정일을 만나기 위해 몸달아했고, 그러한 결과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적에 대해 무 개념, 무방비의 혼란을 불러왔으며, 급기야는 대한민국 내에서 북한의 3대 세습왕조체제를 비호하는 세력과 북한의 3대 세습왕조체제를 반대하는 세력 간의 대립과 갈등이 첨예화 되는 남남갈등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게 되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통일전문가, 북한전문가들이 내놓은 그동안 최고의 통일전략은 공산주의를 추구하는 북한의 수령왕조집단과 대화와 협력, 교류를 통한 통일이었으며, 경제적 지원을 통해 북한의 몰락한 경제를 회복시키고, 그 기초위에서 남북한이 연방제정부를 설립한다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개성공단과 같은 공단들을 많이 만들어 경제적 교류와 협력을 통해 점차적으로 통일에 접근해간다는 정치를 배제하고 경제논리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적 논리로 접근하는 점진적 통일론까지 대두되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대한민국의 점진적, 연방제적 통일론자들에게 크게 한방 먹이는 수단으로 4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인공위성을 가장한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했다.

과연 남한의 통일론자, 북한전문가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북한의 수령왕조독재체제를 그대로 두고 북한의 경제는 개선될 수 있을 것이며, 남한에서 경제지원을 많이 해서 북한의 경제사정이 좋아지면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고 무력도발을 중단할 것이며,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와 공산주의 왕조체제가 정말 한 하늘, 한 지붕아래서 동고동락 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가?

1945년 일제에서 한날한시에 해방되어 3년간의 전쟁을 치르고 남한이나 북한이나 모두 잿더미에서 건국을 시작했고, 시작당시의 경제형편은 일제시기 공업지구였던 북한에 비해 농업지대였던 남한이 더 열악했던 것이 현실이다.

북한의 경제수준은 왜 오늘날처럼 세계에서 가장 낙후한 수준으로 전락했으며 남한은 어떤 비결이 있어서 그처럼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이처럼 잘사는 경제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는가?

대부분의 통일전문가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통일은 비용으로 하는 것인가?

그리고 통일은 북한의 풍부한 자연부원을 약탈하여 남한이 떼돈을 벌거나 북한주민들을 싸구려노동력으로 착취하여 남한사람들의 부를 늘리는 남한주민의 부를 더 많이 축적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뿐인가?

대한민국에 있어서 통일은 도대체 어떤 것이며, 통일을 위해 대한민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북한의 수령왕조체제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다 함께 체험한 탈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통일은 매우 간단하다. 북한 땅에 이승만 대통령이 수립하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수립하여 북한주민들을 수천년 동안 내려오는 왕조의 사슬에서 해방하는 것이며 북한주민들이 자유권과 인권을 보장받는 독립적인 인격체로써 자신을 위해 자신의 가족을 위해 자신의 이웃과 마을과 북한을 위해 자율적으로 책임을 다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아무리 울트라 수퍼맨이라고 할지라도 북한주민들을 먹여 살릴 수 없고, 대한민국이 아무리 돈이 많아서 태평양을 감싼다고 할지라도 김정은 정권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으며, 북한의 가난과 영양실조문제를 절대로 해결해 줄 수 없다.

3월 26일은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대통령의 탄신 14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 우리는 다시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께서 대한민국을 건국하기 위해 구상하셨던 이념과 사상과 철학에 대해 살펴봐야 하며, 1945년 8.15일 일제에서 해방되었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 통일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남 이승만전 대통령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씀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제 저의 천명이 다하여감에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던 사명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바라옵건대 우리 민족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옵소서, 우리 민족을 오직 주님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굳세게 서서 국방에서나 경제에서나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5장 1절 말씀)”

북한주민들의 가장 큰 문제는 공산왕조에 의해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하고 수령왕조의 노예로 전락한 것이며, 북한의 공산왕조는 지금도 북한주민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까지도 공산왕조의 노예로 전락시키기 위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남한의 종북 세력을 동원하여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토론에서는 우남 이승만 전 대통령이 바랐던 통일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오늘의 토론과 논의가 부디 대한민국의 올바른 통일과 통일된 대한민국의 진정한 발전과 번영에 기여하며 북한주민들을 공산왕조에서 해방하고 자유와 인권을 선물하기 위한 투쟁에 기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남 이승만의 단독정부수립은 공산주의를 막아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승만대통령의 단독정부수립으로 대한민국에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수립되었고, 결과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 선진화를 이루어낸 세계 일류의 국가가 되었다. 만일 당시에 이승만대통령이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을 통해서라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과감하게 선택하기 않고, 김구를 비롯한 “좌우합작”세력에 의해 남북한 통일정부가 세워졌더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남 이승만을 독재자라고 하고 남한에서 단독정부가 수립되게 된 것이 이승만의 독재의 결과이자 분단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북한의 정권수립과정을 잘 살펴보면 이승만대통령의 건국과정은 상당히 리버럴한 원칙 속에서 진행되었고 북한은 1946년 2월 8일 소련의 공산화매뉴얼에 따라 소련군정의 힘을 등에 업고 사실상의 단독정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먼저 수립하였다.

북한의 정권의 수립은 절대적으로 구소련의 스탈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으로 시작된 공산주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구소련이 승전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가난한 민중을 위한 새로운 정치 이데올로기로 대두되어 중국과 동구라파 등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나라들은 물론이고, 동남아의 인도차이나와 아프리카, 남미까지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다시 말하여 전 세계는 공산주의 홍역을 치르게 된 것이었다.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제에서 해방된 한반도에도 공산주의는 인류의 이상향이었고,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에 빠져있었다. 일제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한반도에 어떤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확실한 철학을 가진 사람은 공산주의자들 외에는 없었던 것도 당시의 현실이었다. 구소련은 소련군 대위었던 김일성을 해방된 한반도 북쪽의 대리인으로 내세워 동유럽을 공산화했던 매뉴얼에 따라 주도면밀하고도 일사불란하게 공산화 작업을 진행했다. 1945년 11월 신의주반공학생사건을 비롯하여 함흥반공학생사건, 갑산반공사건 등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소련의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시위와 폭동이 일어났지만 김일성은 소련의 군정을 등에 업고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철저하게 제거함으로써 공산화의 기반은 아주 신속하게 다지게 되었다.

북한은 소련군정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1946년 3월 “토지개혁에 관한 법령”을 발포하고 지주의 땅을 무상으로 빼앗아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당분간 경작하도록 현물세를 받고 빌려주는 형태로 토지개혁을 시행했고, 1946년 7월과 8월에 북한의 제조업, 채굴업, 철도, 체신, 은행, 상공업, 수공업까지도 포함하는 “중요산업국유화에 관한 법령”, '남녀평등에 관한 법령'을 연이 발포하면서 이것을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명명했지만 실제로 북한은 이때부터 다시 조선왕조의 전체주의적 시스템을 답습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소련군정을 등에 업은 김일성은 무자비한 독재를 통해 전체 산업의 90% 이상인 1,034개소의 산업시설을 국가적 소유로 전환시켰고 북한 땅에 존재하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잔재는 완전히 소멸되었고 경제적 기반을 빼앗긴 지주, 자본가, 은행가 등 유산자들은 친일파와 부르죠아 계급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거주지에서 쫓겨나 산간오지로 추방되었거나 처형당하기도 했다.

스탈린의 후광을 업은 김일성의 북한이 공산주의 반대세력에 대해 이처럼 철저하게 숙청한데 반해 미국은 ‘리버럴’한 정책을 구사하여 공산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세력들이 건국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고, “좌우합작”은 미군정이 당시 내세웠던 정책으로 공산주의와의 대립보다는 타협을 선호하는 것으로써 오늘날까지도 내려오고 있다. 통일에 있어서 “연방제 통일”이 바로 그러한 발상에 기초한 것이라고 사료된다.

그러나 초대대통령이었던 우남 이승만은 미군정의“좌우합작”에 맞서 미국과 충돌하면서까지 소련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며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시장경제에 기초한 대한민국의 건국을 이끌었다. 당시를 전후해서 이승만과 미국의 관계는 『이승만의 대미투쟁』 (비봉출판사, 2013)에 잘 나타나있다.

남북한의 분단이 70년이 경과되었고, 남과 북이 더 이상의 비교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른 현시점에서 이승만대통령의 최대 업적은 어쩌면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국가를 세운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승만대통령이 미국까지도 호의적이지 않았던 단독정부수립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지켜내게 된 것은 이승만이 공산주의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고 사료된다.

김용삼 (2016년 2월 20일, 김광동 발표)에 따르면 1954년 7월 30일 이승만은 미국을 국빈 방문하며 모교인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공산주의에 대해 연설했는데 이 연설을 통해 왜 이승만이 단독정부수립을 통해서라도 공산주의를 막아내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아시다시피 나는 두 가지 일 즉 자유와 민족자결을 위해 투쟁해 온 사람입니다. 특히 광활한 영토와 수많은 인구라는 천부적인 이점을 갖지 못한 약소민족들의 자유와 민족자결을 위해서 말입니다. 보람 있는 사회를 이루는 이 근본적인 두 요소가 바로 이 순간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습니다. 국내적 국제적 조직들이 개인적 자유의 존립과 민족주의의 전체구조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을 크렘린의 독재자들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통치되는 세계 국가의 노예로 만들려고 획책하고 있습니다.”

우남 이승만은 공산주의에 대해 “공산당은 호열자(콜레라)와 같다”고까지 표현하기도 했었는데,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우남 이승만이 직접 발간하던 『태평양잡지』 1923년 3월호 (제31호)는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공산당 주의가 20세기에 나라마다 사회마다 전파되지 않은 곳이 없어, 혹은 공산당이나 사회당이나 무정부당이라는 이름으로 극렬하게 활동하기도 하고, 혹은 자유권이나 평등권의 이름으로 부지 중 전파되기도 하여, 전제·압박하는 나라나 공화·자유 하는 백성도 그 풍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자가 없도다.

공산당 주의도 여러 내용이 있어서 그 의사가 다소간 서로 같지 아니하나 보통 공산당을 합하여 논의해보면, 그 주의가 오늘 인류사회에 합당한 것도 있고 합당치 않은 것도 있으므로, 이 두 가지를 비교하여 이 글의 제목을 ‘당부당’이라 하였다. 우선 그 합당한 것을 먼저 말하고자 한다.

인민의 평등주의다. 옛적에는 사람을 반상(班常)으로 구별하여 반(班)은 귀(貴)하고 상(常)은 천(賤)하므로, 반은 의례히 부(富)하고 상은 의례히 빈(貧)하여, 서로 바뀌지 않도록 구분하여 방한(防閑: 못하게 하는 범위)를 정하여 놓고, 영영 이와 같이 만들어서, 양반의 피를 타고난 자는 병신·천치라도 윗사람으로 모든 상놈을 다 부리게 하고, 피를 잘못 타고난 자는 영웅·준걸의 재질을 타고 났을지라도 하천한 대우를 면치 못하였으며, 또한 노예를 만들어 한번 남에게 종으로 팔린 자는 대대로 남의 종으로 팔려 다니며 우마(牛馬)와 같은 대우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여러 천년을 살아오다가 다행히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공화(共和)제 이후로 이 사상이 비로소 변하여 반상의 구별을 혁파하고 노예의 매매를 법률로 금하였으니, 이것은 서양 문명의 사상이 발전된 결과로서 만세 인류의 무궁한 행복을 가져오게 하였도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반상의 구별 대신에 빈부의 구별이 스스로 생겨서 재산 가진 자는 이전 양반 노릇을 여전히 하며 재물 없는 자는 이전 상놈 노릇을 감심(甘心: 달게 여김) 하게 되었다. 그런즉 반상의 명칭은 없어졌으나 반상의 등분[차별]은 여전히 있어서 고금에 다를 것이 별로 없도다.

하물며 노예로 말하면 법률로 금하여 사람을 돈으로 매매는 못하게 하였으나, 월급이라 하는 보수 명의로 사람을 사다가 노예같이 부리기는 마찬가지라. 부자는 일 아니하고 가난한 자의 노동으로 먹고 살며 인간행락(人間行樂)의 모든 호강 다 하면서, 노동자가 버는 것으로 부자 위에 더 부자가 되려고 월급과 삯전을 점점 깎아서 가난한 자는 호구지계(糊口之計)를 잘 못하고 늙어 죽도록 땀 흘리며 노력하여도 남의 종질로 뼈가 늘어나도록 사역하다가 말 따름이요, 그 후손이 태어나더라도 또 그렇게 살 뿐이니 이 어찌 노예 생활과 다르다 하겠는가. 그러므로 공산당의 평등주의가 이것을 없이하여 다 균평하게 하자 함이니, 어떻게 이것을 균평히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거니와, 평등을 만들자는 주의 자체는 옳은 일이니 이는 적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산당 주의 중 부당한 것을 논의하면 다음과 같다.

(1) 재산을 나누어 가지자 함이니, 모든 사람의 재산을 토지 건축 등 모든 부동산까지 합하여 평등하게 나누어 차지하게 하자 함이니, 이것은 가난한 사람은 물론 환영하겠지만 토지를 나누어 가진 후 게으른 사람들이 농사를 아니 하든지 일을 아니 하든지 하여 토지를 다 버리게 되면 어찌하겠는가. 부지런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여 게으른 가난장이를 먹여야 할 것이요, 가난장이는 차차 숫자가 늘어서 장차는 저마다 일 아니 하고 얻어먹으려는 자가 나라에 가득할 것이다.

(2) 자본가를 없이하자 함이니, 모든 부자의 돈을 합하여 공동으로 나누어 가지고 살게 하면, 부자가 양반 노릇하는 폐단은 막을 수 있겠지만, 재정가[기업인]들의 경쟁이 없어지면 상업과 공업이 발달하기 어려우리니, 사람의 지혜가 막히고 모든 기기 미묘한 기계와 연장이 다 스스로 폐기되어 지금 이용·후생 하는 모든 물건이 다 진보되지 못하며, 물질적 개명이 중지될지라. 자본을 폐기하기는 어려우리니 새 법률을 제정하여 노동과 평등한 세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 나을 터이다.

(3) 지식계급을 없이하자 함이니, 모든 인민의 보통 상식 정도를 높여서 지금의 학식으로 양반노릇 하는 사람들과 대등하게 되고자 하는 것은 가능하거니와, 지식 계급을 없이 하자 함은 불가하다.

(4) 종교단체를 혁파하자 함이라, 자고로 종교단체가 공고히 조직되어 그 안에 인류 계급도 있고, 토지 소유권도 많으며, 그 속에서 인민 압제와 학대를 많이 하였나니, 모든 구교 숭배하던 나라에서는 이 폐해를 다 알지라. 그러나 지금 새 교회의 제도는 이런 폐단이 없고 겸하여 평등 자유의 사상이 본래 열교확장(裂敎擴張)되는 중에서 발전된 것이라. 교회 조직을 없이 하는 날은 인류덕의(人類德義)상 손해가 지대할 것이다.

(5) 정부도 없고 군사도 없으며 국가사상도 다 없이 한다 함이라. 이에 대하여는 공산당 속에서도 이견이 많을뿐더러, 지금 공산당을 주장한다는 러시아만 보아도 정부와 지도자와 군사가 없이는 부지할 수 없는 사정을 자기들도 다 아는 바이다. 다 설명을 요구치 않거니와, 설령 세상이 다 공산당이 되며, 동서양 각국이 다 국가를 없이하여 세계적 백성을 이루며, 군사를 없이 하고 총과 창을 녹여서 호미와 보습을 만들지라도, 우리 한인은 일심단결로 국가를 먼저 회복하여 세계에 당당하게 자유국을 만들어 놓고 군사를 길러서 우리 적국의 군함이 부산 항구에 그림자도 보이지 못하게 만든 후에야, 국가주의를 없이할 문제라도 생각하지, 그 전에는 설령 국가주의를 버려서 우리 이천만이 모두 다 밀리네어(백만장자)가 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원치 아니할지라.

우리 한족에게 제일 급하고 제일 긴하고 제일 큰 것은 광복사업이라, 공산주의가 이 일을 도울 수 있으면 다 공산당 되기를 지체치 않으려니와, 만일 이 일에 방해될 것 같으면 우리는 결코 찬성할 수 없노라.”

이승만전대통령은 공산주의가 평등을 위해 1) 재산, 2) 자본가, 3) 지식인, 4) 종교, 5) 국가를 각각 없애자고 주장하는데 대해 재산의 소유권을 없애면 모든 사람이 일을 안 해 게을러지고, 기업을 하는 자본가를 없애면 경쟁이 없어 발전이 없고, 지식인을 없애면 지식의 하향평준화가 초래되고, 종교를 없애면 인간의 도덕심이 없어지게 되며, 국가를 없애자는 주장은 공산주의의 본산인 러시아에서마저도 말로만 하는 실현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건국에 도움이 되면 수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분단의 원흉으로 오해받는 우남 이승만의 단독정부수립은 대한민국의 남쪽만이라도 공산주의에서 지켜내기 위한 이승만의 전략이었고, 승리였다고 평가한다.

3. 한반도에서 수 천 년을 내려온 왕정과 왕조세습을 끝장낸 혁명가 우남 이승만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현재의 북한은 일제식민지 때보다 훨씬 피폐되어 있고 북한주민들은 일제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3대에 걸쳐 매우 잔학한 학대와 탄압을 받으며 최소한의 인간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한반도에서 일제의 식민지가 끝장나고 해방이 된 것은 축복이었지만 북한 땅에 들어선 공산주의 가면을 쓴 새로운 왕조는 일제시기보다 훨씬 더 비참한 생활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였고, 북한주민들은 자유라는 말조차 모른 채 조선왕조 때보다도 더 철저하게 노예화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1987년에 수립된 대한 제국은 1899년 대한제국 국제(헌법)을 제정하였고, “제 2조, 대한제국의 정치는 만세불변의 전제정치이다. 제 3조, 대황께서는 무한한 군권을 향유하시니”라고 적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북한이 헌법보다 더 상위기준으로 정하고 있는 “당의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과 같은 것이었다.

우남 이승만은 배재학당시절 절대군주의 횡포로부터 나라가 사는 길은 영국이나 일본 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같은 민주공화제 즉, 군주가 없는 민주국가가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그에 대해 회고한 적이 있다.

“내가 배재학당에 가기로 하면서 가졌던 포부는 영어를 , 단지 영어만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웠는데, 그것은 정치적 자유에 대한 사상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억압받고 있었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기독교국가 시민들은 그들의 통치자들의 억압으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생전 처음으로 들은 나의 가슴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혁명적인 것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같은 정치적 원칙을 따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남 이승만은 조선왕조의 전제정치에 대해 일찍이 환멸을 느꼈고 고종을 폐위시키는 음모에 가담하여 1899년 1월 체포되었고 1899년 7월 27일 태(苔)100대 및 종신징역으로 형이 확정돼 이승만은 가까스로 죽음을 면했지만 한성감옥에서 5년 7개월간의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우남 이승만은 왕조가 오늘과 같은 민주공화제의 체제를 꿈꾸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우남이었기에 해방 후 아무런 매뉴얼도 없고 한반도 인구의 과반수가 공산주의 망령에 빠져있고, 미국의 지나친 “리버럴”전략에 의해 혼란 그 자체였던 시기에도 주저 없이 유엔의 승인을 얻어낸 단독정부수립을 이끌어내게 되었고, 7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는 우남 이승만의 선택이 얼마나 옳은 선택이었는지, 특히 서민들, 일반 백성들에게 우남이 선물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는 그야말로 대박과 행운의 동아줄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북한에서는 일제의 식민지시대를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한의 현 상황은 일제식민지 때보다도 더 절망적이고, 더 고통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고, 심지어는 일제에서 해방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탈북자의 시각에서는 일제식민지에서 한반도가 해방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방 후에 한반도의 남쪽에 국민이 진정으로 나라의 주인이 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수립되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사료된다.

따라서 우남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은 수천년을 내려온 왕정과 왕조세습체제의 고리를 끊고 자유 민주공화제의 새 시대를 연 혁명중의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남과 북의 양 체제를 경험한 탈북자들은 이점에 유념해야 하며 향후 북한을 연방제통일이나 남한과의 경제교류니, 협력이니 하는 점진적 통일정책이 아닌 북한의 왕정과 수령세습왕조체제를 청산하고 북한주민들이 진정한 나라의 주인이 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자유 민주 공화제를 북한 땅에 세워야 하는 것이다.

1953년 8월 10일 이승만 전 대통령은 남과 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휴전이 되자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공산 학정 속에 당분간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우리의 불쌍한 동포들에게 나는 이렇게 외치는 바입니다. 절망하지 마시오. 우리는 결코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이며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이북 5도와 북한의 우리 동포들을 다시 찾고 구출하려는 한국 국민의 근본 목표는 과거와 같이 장차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남 이승만대통령이 꿈꾸었던 부강하고 풍요로운 나라, 일반시민들이 그들의 통치자들의 억압으로부터 법적보호를 받을 수 있는 나라가 현재는 남한에 수립되었다. 그러나 우남이 6.25전쟁이 끝난 후에 발표했던 성명은 아직도 미제의 숙제로 남아있다. 그동안 우리의 통일문제는 바로 우남 이승만이 1953년 8월 10일 발표한 성명대로 공산학정속에서 고생하는 불쌍한 북한의 동포들을 구출하려는 근본목표가 되어야 했으나 세월의 흐름에 의해 변질되고 퇴색되어 우남이 그토록 경계했던 좌우합작, 남북합작의 아류인 연방제통일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통일정책이 수립되었고, 결과 대한민국 국민의 혈세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해치기 위해 호시탐탐 노력하는 적국의 장수에게 상납되어 4차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발사를 만들어내는 기상천외 한 결과를 양산해냈다.

우남 이승만이 오늘의 이 현실을 보고 있다면 분명히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일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통일전문가들과 북한전문가들이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퍼부어가며 통일정책을 연구했고, 별의별 통일방안을 다 내놓았지만 오늘날 남과 북의 분단의 골은 더 깊어지고, 북한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의 머리위에 핵 소나기를 퍼부을지 아니면 세균폭탄을 쏟아 부을지, 그것도 아니면 사이버해킹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시스템을 완전 마비시켜 식물국가로 만들어 놓을지 모를 일촉즉발의 위기에 내몰리게 되었다.

이 모든 원인은 우남 이승만의 건국정신과 건국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승만대통령이 단독정부수립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이며, 공산주의와 조선왕조의 패악에 대해 올바른 이해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사료된다.

이제라도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은 우남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갈망했던 자유 민주공화제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북한 땅에 수립함으로써 그야말로 공산왕조의 학정 속에서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북한 동포들을 하루빨리 구출하기 위한 통일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남 이승만 대통령의 탄신 141주년을 맞으며 더욱더 그분의 시대를 꿰뚫어보았던 식견과 철학과 정신이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오늘을 기해 향후 탈북민들에게 우남 이승만과 건국에 대한 근현대사 교육을 활발하게 진행하여 북한주민들에게 하루빨리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선물해줄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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