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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대 대통령 취임사(1948년 7월 24일)



개화한다고 예를 잊어서는 안 된다-제국신문(1901. 6. 12)

관리자
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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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한다고 예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제국신문 1901. 6. 12

 

 

대저 예라 하는 것은 오륜의 근본이요, 만법의 기초라. 그런고로 예가 없으면 윤기(윤리와 기강을 아울러 이르는 말)가 없고 예가 없으면 법이 없는 것이니 예가 이렇듯이 사람에게 중한 것이거늘 근일에 자칭 화하였다는 사람들의 언어와 행위를 볼 지경이면 예모를 잃는 자가 심히 많으니 진실로 소이연(所以然 : 그렇게 된 까닭)을 알 수가 없도다.

 

천지개벽한 후로 사람이 처음 나서 마음이 우준하여 구멍에서 살고 나무열매를 먹다가 차차 꾀와 욕심이 생겨서 서로 다투고 빼앗는 폐단이 있으매, 성인이 그 가운데 나서 인류가 서로 해하는 것을 근심하사 인의로 가르쳐서 서로 어지러움이 없게 하시니 이른바 임금과 스승이라. 그 때에 교화가 비록 예로 명목은 아니하였으나 서로 어지러움이 없을 지경에는 예가 아니면 어찌 인도하리오. 이는 예가 사람의 도리에 먼저 생긴 것이라. 선왕이 이것을 인하여 더욱 밝히시어 세상 가르치는 법을 세우시매 이에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의 예절이 있었으니, 만일 예가 아니면 부자가 친함이 없고, 군신이 의가 없고, 부부가 별다름이 없고, 장유가 차례가 없고, 붕우가 신의가 없을지니 사람이 오륜이 없으면 곧 금수에 가까울지라.

 

이로 볼진대 야만이라 이르는 것이 그 음식과 의복과 궁실이 아름답지 못함을 이름이 아니라 그 윤기倫紀가 없음을 이름이요. 개화라 하는 것도 또한 의복, 음식, 궁실의 아름다움을 이름이 아니요, 그 윤상倫常이 있음을 이름이라. 진실로 윤상이 없으면 아무리 의복, 음식, 궁실이 화려할지라도 야만이라 할 것이니. 대저 개화를 의논하는 자가 윤상에 먼저 힘쓸 것을 주장하지 않고 오직 포식탄의하고 평안할 것만 도모한즉, 그 속은 중히 여기지 않고 겉만 중히 여김이니 이는 세상 가르치는 본 뜻을 잃어버림이라 어찌 가하다 하리오. 지금 개화한 모든 나라들이 예가 있다고 좇아하지 아니하나 그 부강한 소이연을 볼진대 예가 아니면 그러할 수 없을 것이, 예가 없으면 그 사람이 실수가 있을 것이요, 예가 있으면 그 나라가 실수가 없을 것이니 내가 실수가 없으면 뉘가 감히 나를 업신 여기리오. 이는 이른바 천하에 대적할 이 없음이라.

 

슬프다. 우리나라 연소자제의 외국유람하고 외국문견 있다는 사람들은 한갓 남 잘사는 것 부러워할 줄만 알고 내 집에 있는 예법 지킬 줄은 몰라서 망려오디이 개화라는 것이 윤상 밖의 일로만 짐작하여 타인에게 무례하기는 고사하고 심지어 그 부형에게의 효제를 여사(餘事 : 그리 중요치 않은 일)로 하는 사람이 왕왕 있으니 어찌 가엾지 않으리오. 대저 사람의 도리는 효에서 앞설 것이 없는데 효제에 범연하면 충군애국할 마음이 어디로 쫒아 나오며 그 몸을 닦지 못하고 능히 치국평천하 하는 사람이 고금에 어디 있으리오. 동서양에 개화하였다는 나라사람들이 서로 응접하는것을 보더라도 읍양(揖讓 : 겸손한 태도를 가짐)의 진퇴가 극진히 경레하여 조금도 차착(差錯 : 순서가 틀리고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이 없으니 이런 것은 참 가히 배울 만한 것이거늘 우리나라 사람 중 주견 없이 외국 갔다온 이는 이왕 공경하는 곳에도 도리어 거만하기도 하고 본래 지체 있는 곳에도 절하기를 불공히 하니 참 알 수 없는 일이더라. 예모는 배우기 쉬운 것이거늘 남의 쉬운 것도 배우고 능히 그 어려운 것은 배웠을는지 모를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화 이후로 더욱 예모가 없어서 걸핏하면 개화 세상에 무슨 예가 있으리요 하니 그 생각인즉 내가 스스로 개화하였으매 눈을 들면 다 가소롭다 함이라. 한갓 손에 반지 끼는 것으로 개화한 표적을 삼고 입에 궐련 무는 것으로 개화한 문체를 삼고  방탕한 것으로 호걸인 체하고 사치한 것으로 영웅인 체하고 여간 외국시세 짐작하는 것으로 경천위지하는 재주나 있는듯하고 겨우 권리라 목적이라 기초하 방침이라, 몇 마디 말을 넘기면 개화문장인 체하나 그 속을 보면 남의 나라 실학은 고사하고 우리나라 법률과 사정에도 망매(茫昧 : 세상 일에 어두움)하고 다만 무례한 것만 일삼으니 어찌 개탄할 바 아니리오. 

 

무릇 예라는 것은 곧 사람의 경이경계라 천만사에 예가 붙지 않는 일이 없고 예가 없이 되는 일이 없나니 그런고로 전장에도 예가 있어 예를 쓰면 이기고 예가 없으면 패하나니 예도에 관계가 그렇게 크고 넓거늘 우선 있는 하사(賀辭 : 측하의 말) 예절부터 만홀(漫忽 : 무심하고 소흘함)하니 더구나 사위상 예절을 어찌 안다 하리오. 개탄함을 이기지 못하여 두어 마디 설명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