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가를 만년반석 위에 세우자"
- 제1대 대통령 취임사(1948년 7월 24일)



화복이 고르지 못한 연고-제국신문(1902. 10. 4)

관리자
2017-11-15
조회수 1444

화복이 고르지 못한 연고

 

 

제국신문 1902. 10. 4

 

 

어떤 친구가 우연히 탄식하여 말하기를 작년에 연사(年事 : 농형)가 불풍하여 시골 농민들은 곡식을 구경하지 못하며 다만 열악한 음식으로 연명하여 혹 부황도 나며 아사도 하며 남부여대하고 유리걸식하는 자 무수하며 서울은 쌀값이 많이 올라 남북산 밑으로 모든 궁촌에 황황오오한 정형이 사람의 눈으로 차마 보지 못할 처지에 있으며, 지금 괴질이 유행하여 성중에 매일 밤 나가는 시신이 평균 사백여 명이라 하는데 어떤 집에서는 오륙 명 식구가 어린아이 하나만 남고 다 참혹히 상하였으되 혹은 집이 없어 남의 집에 우거(寓居 : 남의 집이나 타향에서 임시로 삶)하든지, 혹 남의 곁방이나 행낭살이 하다가 무지한 병이 침노하여 고약한 주인이 문밖에 내어놓으니 길가에서 토사하매 내외국 행인들이 보고 혹 야만 나라라고도 하며 혹 떠매어 병원이나 집으로 끌어가는 자도 있고 혹 그 죽은 자의 처자 가속이나 있으면 붙들고 지르는 소리와 형상을 사람은 차마 보지 못할지라.

 

특별히 자상으로 삼천 원 내탕전(임금이 개인 용도로 쓰는 돈)을 내리시어 생명을 구제하게 하시니 그 많은 이들이 참 위생을 위하여 바로 쓸지 혹 이럭저럭 써 없앨지는 모르는 일이겠거니와 성의의 간절하심은 이러하시고 일변으로 외국공영사는 합력하여 사오만 원의 돈을 허비하고 임시위생원을 설시하여 가난한 사람이라도 약을 얻어 쓰게 만드니 그 뜻이 이렇듯 감사한지라. 사실을 생각하면 외국 친구들은 이렇듯 힘써 대한 인민을 구제하고자 하거늘 내 나라 대신이며 관찰 군수 등 직책 맡은 이들은 보조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니 그 수치당하는 양반네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분한 줄도 모르거니와 우리는 소위 예의지방의 신민이라고 참 분하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할지라.

 

지금 이 처지에 처하여 장안의 형편을 살필진대 조금도 황망한 빛은 없고 안연무사하여 시화세풍(나라 안이 화평하고 풍년이 듦)한 때 같으며 도리어 의복음식과 궁실누대는 날로 사치 화려하여 가히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며 잔치와 노래와 풍류와 기생은 한가한 때가 없이 사방에 태평일락한 광경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 사람이 날로 고통하여 오륙 년 전에만 비하여도 곧 사람이 다 살 수 없을 듯하거늘 어디서 돈이 항상 생겨 여일이 이러한지 실로 측량하지 못할 일이로다. 본 기자 청파(끝까지 들음)에 답하여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곧 지금 사람들이 다 하는 말이라. 내가 그 연고를 대강 말하겠노라.

 

맹자께서 양혜왕께 일러 가라사대 왕이 어찌 나라를 이롭게 할고? 하시면, 대부 말하기를 어찌 내 집을 이롭게 할고? 하리니, 상하가 서로 이를 도모하면 나라가 위태하리로다 하셨나니, 지금은 벼슬하는 사람이 이익을 도모하는 세상이라. 국가 안위는 고사하고 권리를 잡히는 날은 내 리를 경영하나니 차소위 십시일반이라. 가난한 농민 만명에게서 한 냥씩만 거두면 거둔 사람은 만냥이라. 이것으로 혹 놀기도 하며 흔히 써 없이 하기도 하며 당초에 없던 것이 공히 생긴 줄로 여긴즉 세상 호강을 극히 다하여도 항상 무궁하여 가난한 백성이 다 없어지기까지는 그 재물 근원이 마르지 않을지라.

 

백성들이 아무리 가난하여도 한 냥씩 잃어버린 것으로 죽지는 않을 터인즉 내 소곡만 좀더 부지런히 놀리면 땅에서 나는 곡식으로 보충하겠고 전에 밥 먹던 것을 오늘 죽 먹으며 전에 명주나 모시 입던 것을 오늘 양목이나 베 입으면 관민에게 잃어버린 한 냥 돈을 충수하겠다 하여 자기가 어려움을 견디고 관원의 욕심 구렁텅이를 먹이려 하니, 슬프다. 이 구렁텅이가 한이 없어 백 가지 천 가지로 내라 하매 점점 더 어려울수록 점점 부지런하고 더 검소하니 이로 인연하여 아무것도 아니하는 자는 더 편하고 돈 있어 밑천을 가진 자는 더욱 부요호화하며 부지런히 벌어 먹고 괴로이 일하던 백성은 더욱 애쓰고 더욱 힘쓰며 가난 곤궁한 자는 더욱 기한 소망을 면하지 못하니니 차소위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세상이라.

 

좋은 사람은 한량없이 좋고 어려운 사람은 한량없이 어려운 때인즉 어려운 백성은 아무리 죽겠다 하나 아직 극항에 이르지 아니함으로 이 만큼이라도 부지함이라. 장차 극항에 이르는 날은 피차 소망제황을 면하지 못할 터인데 오늘날 부요호화한 사람이 먼저 재앙을 당할지라. 이는 반드시 하늘이 무심하지 않을지니 소소히 믿을 바거니와 서전에 하였으되 하늘 들으심이 백성으로부터 하며 하늘 보심이 백성으로부터 하신다 하였나니, 민심이 돌이켜 천리를 바로 잡고자 하는 날은 하늘이 반드시 국세를 부지하게 하실 줄을 믿겠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