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가를 만년반석 위에 세우자"
- 제1대 대통령 취임사(1948년 7월 24일)



성문(城門)을 두는 것이 국민에게 불편함-제국신문(1902. 9. 1)

관리자
2017-11-14
조회수 1949

성문(城門)을 두는 것이 국민에게 불편함

 

 

제국신문 1902. 9. 1

 

 

성(城)이라 하는 것은 적국을 막는 것이라. 옛적에 궁시(弓矢)로 전쟁할 때에는 이것이 아니면 어찌 할 수 없던 고로, 동, 서양의 유명한 대국에는 성 없는 도성이 없어 그 위에서 말이 오륙 마리가 일자로 달려도 떨어질 염려가 없는 곳이 많은지라 지금껏 그 황청이 의연히 서서 유람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굉장함을 놀라게 하는 바라.

 

근래에 대포가 생겨 삼십 리 밖에서 탄알을 쏘아서 부수는 연장이 생겨난 이후에는 인명이 너무도 과다히 상하는 고로 사백 근 이상으로 된 탄알은 쏘지 못하게 공법으로 금하는 바라.  따라서 성은 전혀 쓸데없는 물건이 된지라. 그러므로 근래 도성(都城)들은 성이 없나니 지금 세상에 처하여 성을 높이 쌀으며 활을 연습하는 것은 비컨대 전쟁마당에서 병풍조각을 둘러치고 앉아 피난하고자 함과 같은지라. 따라서 남의 웃음을 어찌 면하리오.

 

하물며 나라가 믿을 것은 덕에 있는데 성을 쌓아 적국을 막고 종사와 백성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민심이 이산(離散)치 않겠지만, 만일 타국을 믿어 내 백성을 의심하는 뜻이 보인다면 그 민심이 어찌 귀순(歸順)하며 민심이 귀순치 못한 후에 만리장성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마땅히 백성 마음 안에 장성을 쌓아 나라를 보호하는 충심을 굳건하게 한 후에야 한 조각 돌이 없어도 남이 넘겨보지 못할지라.

 

지금 우리나라에 사대문을 닫는 풍속이 심히 아혹(訝惑 : 의혹)하니, 이는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문제 중에 또한 한 가지라.

 

대개 지금 세상에는 사해(四海)가 모두 형제라. 사람이 진실로 개명하여 널리 인애할 도를 알진대 내외국인을 분별치 않고 다만 나와 원수되는 자는 나의 적국이라 할 뿐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 식견에는 타국인을 특별히 달리 아나니, 이 형편에 처하여 외국인들은 모두 도성 안에 들어가 궁궐 지척에 외국 병참소도 있고 대궐도 새로 공관근지에 지으며 공관보호병은 무단히 출입하는 터에 밖으로 성을 두고도 성문을 닫는 것도 성 쌓는 본의와 합치하니 하며, 외국사람을 태운 인력거꾼은 밤중에도 도성에 드나들거늘 내 나라 사람이 그 뒤에 따라오면 순검이 막고 들이지 아니하고 외국인의 군기(軍器)를 바리로 싣고 무단히 출입하되 내 나라 백성은 칼집 하나를 못 가지며 육혈포 하나를 사지 못하니, 이는 내 창으로 내 방패를 치는 것과 같은지라. 외국인을 믿어서 내 백성을 의심한다면 어찌 나라가 설 수 있으리오. 일변 우습기도 하거니와 일변 통곡도 할 일이라. 백성이 어디로 돌아가리오.

 

금년에 칭경연회(稱慶宴會)에 외국 손님오는 것을 인연하여 도로도 수리하며 성문을 중수한다 하니, 이것이 내 나라 수치를 면코자 함이라. 당연히 할 일이지만 성문을 중수하여 여전히 개폐문을 하고자 할진대 차라리 문을 없에 내 백성에게도 편리하며 외국인에게 수모도 받지 않는 것이 참 나라에 있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각국이 아무리 비편(非便)이라 할지라도 영히 규모를 세워 밤에 열고 내 백성의 마음도 수습하며 수치도 막을지라. 어찌 외국인의 불편함은 관계 긴중하여 밤에도 열고 내 백성의 급하고 어려운 것은 다 불관이라 할진대 민심이 어찌 이산치 않으리오. 대개 고금천지에 이런 일은 다시 없나니 이런 기회를 당하여 특별히 귀정할 일이라.

 

내 자실(子姪)을 때려 내쫓아 임으로는 출입도 못하게 하고 이웃사람을 불러다가 건너방 안벙에 임의로 출입하며 살라고 한다면 남이 그 집안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아무리 악한 자질이라도 따라 들어오게 하여 은의(恩義)로 감동하도록 만들며 이웃사람에게 수모당하는 것을 막아야 그 집안 어른이 된 이들이 대접을 받는 법이라.

 

지금 정부 관원되신 이들은 어찌하든지 상의만 승순(承順 : 윗사람의 명령에 잘 따름)하여 부귀나 있을 경영뿐이오, 백성의 마음이 날로 이산하여 자기에게 편벽되게 은혜 입힌 나라집이 점점 위태하게 되는 것은 염려하지 않는고로 무엇이든지 명을 한 번 내린 후에는 백성이 원통하고 슬퍼하는 일을 돌아보지 않아 구제할 도리는 생각도 아니하매 그 아래 딸린 순검, 병정이 또한 자기동포와 자기 형제자매가 불공불평한 대접을 받는 것은 통분히 여기지 못하고 총대로 찌르며 군도자루로 쳐내치니 아닌 게 아니라 저희끼리 서로 먹을 뿐이라. 어째 개탄하지 않으리오. 관민 간에 대소사는 다 그 근본을 생각하여야 옳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