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가를 만년반석 위에 세우자"
- 제1대 대통령 취임사(1948년 7월 24일)



국가 흥망의 근인(根因)-제국신문(1903. 2. 5)

관리자
201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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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흥망의 근인(根因)

 

 

제국신문 1903. 2. 5

 

 

우리나라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폐단을 말하자면 '어둡고 완고하다. 원기가 없고 나약하다. 용맹스러이 하고자 하는 일이 없다' 하는 것이라 할 터이나, 그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운수라 하는 것을 믿음이라. 이것을 믿는 마음 때문에 백가지 중 하나도 될 수 없으니 실로 깊이 걱정하는 바로다.

 

애석하도다, 사람의 어리석음이 어찌 이다지 심하뇨? 종시 그 연고도 묻지 않고 이치도 생각지 못하고 다만 남이 우연히 운수라 하는 것을 말한다고 나도 또한 따라 믿어 나라의 흥망 안위가 운수에 달렸고, 사람의 수요화복(壽夭禍福)이 운수에 달렸다 하고 심지어 조그마한 물건이 깨어지고 상하는 것이 또한 다 운수에 달렸다 하니, 이 생각으로 사람마다 일을 잘하면 되는 것이며 못하면 아니되는 것은 종시 생각지 못하는지라.

 

그 운수의 있고 없는 것은 종차 설명하려니와 만일 만사 만물이 다 운수에 정하여 변할 수 없을진대 부지런히 일하면 무엇하며 애쓰고 벌이한들 무엇하리오. 농부가 밭 갈고 김매고 추수하니 하여도 죽지 않을 운수면 부자 갑부라도 자연히 될 거시요, 정부도 없고 벼슬도 내지 말고 법률 규칙을 마련하지 아니하여도 흥할 운수 같으면 영·미 각국을 통일할 기회라도 이를지라. 나부터라도 공부할 이치도 없고 시시비비 의논할 까닭도 없을지라. 그러나 어찌 옛적 선왕네와 성현네는 정사를 밝히며 교육을 힘쓰며 법률을 세우며 군사를 기르며 농사를 권장하였나뇨? 마땅히 아무 일도 아니하고 가만히 앉아 운수만 기다렸을진대, 이는 성현네도 국가흥망이 운수에 달리지 아니하였고 사람의 잘하고 못하기에 있는 줄로 아신 바요, 또한 설령 운수가 있다 할지라도 사람이 잘하면 좋은 운수가 올 것이요 못하면 불행한 운수가 이를지라. 어찌하여 사람마다 말하기를 만사가 국운과 천운에 달렸으니 인력으로 할 수 없다 하느뇨?

 

옛적 하은주 삼대시절에 천하태평하고 가급인족(家給人足 :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퐁족함)한 것이 선군형상의 잘다스리고 일 잘하신 연고요, 걸주(桀紂 : 중국 하의 걸왕과 은의 주왕을 일컫는 말로 폭군을 말할 때 비유되는 인물) 유려의 복종망국한 것은 악한 임금과 간사한 신하가 멸망하도록 만든 연고라. 진시황의 이세에 망함과 한패공의 포의로 창업함과 기하대대로 나라가 바뀌고 세상이 변하는 근인이 다 사람이 잘하고 못하기에 달렸으매 이후 사람이 그 사적을 보고 말하기를 아무아무 때는 법도와 덕화가 저렇듯 장하였으니 아니 흥왕할 수 없다 하며 아무아무 때는 저렇듯 악하였으니 멸망을 어찌 면하리오 하는 바라. 중간에 선비들이 백성의 참람한 생각이 늘끼 염려하여 억견을 지어 말하기를 아무 임금이 천운을 이어 임금이 됨이라. 사람이 힘으로 못하는 바라 하였으매 이로써 난신적자(亂臣賊子 :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의 생각함은 없이 이것으로써 크나 작으나 운수로 돌리니 어찌 이다지 속기를 즐겨하느뇨?

 

서양으로 보아도 상고적 애굽(이집트), 희랍(그리스), 로마 등국이 차례로 흥왕하였다가 차례로 망한 것이 다 어찌어찌하여 그러한 연고가 다 있어 할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요, 중고적 이하로만 보아도 폴란드의 망함과 스페인의 흥함이 이탈리아 흥왕됨과 영, 불, 독과 개벽 이후 세상에서 모르던 미국이 드러나 수백년 전부터 나라가 되어 지금 문명 상등국이 됨과, 폴란드가 망하고 일본이 중흥함과 대한 청국이 이렇듯이 쇠하여 가는 것이 다 운수 한 가지에 달렸다 하겠는가. 그 사기를 다 어찌어찌하여 그러한 것을 다 자세히 말할 폭원이 없거니와 옛사람의 말도 너무 무도한 세상만 아니면 하늘이 다 붙들어 주고자 하신다 하였나니 어찌 사람이 잘하고도 운수가 억지로 멸망하게 하였다 하리오.

 

그 강하던 폴란드가 일조에 러시아에게 망한 것이 그 임금이 자기의 일신만 생각하고 원수를 의지하여 태산반석 같은 보호로 여기다가 창생(蒼生 : 세상의 모든 백성)을 어육(魚肉 : 짓밟고 으깨어서 아주 결판냄) 만들고 종사를 복멸하며 필경은 자기 몸이 또한 사로잡힌 종이 되어 함께 멸망에 들어갔고 스위스는 그때에 어린 임금이 있어서도 그 위험함을 미리 깨달아 헤아리되 나의 몸이 러시아에 해를 받아 죽어 없어질지라도 나의 몸을 살리기 위하여 종사와 강토를 복멸치 않으리라 하여 러시아 캐서린 여왕의 무수한 위협과 농락과 모해(謨害 :모략을 써서 남을 해침)하는 중에서 여러 번 위험함을 지내고도 종시 굴치 아니하다가 필경에 여왕이 뜻대로 못하여 화병으로 죽으매 홀로 국권을 보전하여 후세에 유명한 바라.

 

이것이 다 하기에 달리고 운수에 관계없음을 분명히 질정하리니 지금이라도 힘쓰면 흥왕에 나아가기 어렵지 않으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