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가를 만년반석 위에 세우자"
- 제1대 대통령 취임사(1948년 7월 24일)



의복 빛을 일정하게 할 일-제국신문(1903. 3. 26)

관리자
201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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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 빛을 일정하게 할 일

 

 

제국신문 1903. 3. 26

 

 

의복에 물들여 입는 법은 고금이 일반이며 동서양이 한 가지라. 흰옷 입었다는 옛말도 들어보지 못하였고 흑색이나 청색 입지 않은 지금 동서양 사람도 보지 못하였으되 유독 우리 대한만 흰빛과 옥색을 숭상하는 고로 외국사람이 조롱하기를 백의국이라고도 하며 종이사람이라고도 하는 것이 그 까닭이라.

 

대저 옛적 사기를 보더라도 천자가 처음으로 나라를 세우매 청, 황, 적, 백, 흑 오색 중에서 무엇이든지 각각 숭상하는 빛이 있어 의복과 기치를 그 숭상하는 반대로 한결같이 하였고 지금 동서양으로 말하더라도 복색이 모두 일매져서 터럭 만치도 같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청국같이 법령이 문란한 나라도 이색적으로 입은 백성이 없고 또 일개인의 의복으로 말하더라도 바지저고리와 주의(周衣 : 두루마기) 빛을 일매지게 하는 것은 다 아는 바거니와 본국에서는 어찌하여 조관의 공복 외에는 모두 일정한 규칙이 없고 사람마다 제 의견대로 주의빛 각각, 저고리 각각, 바지 각각, 마고자 조끼 각각, 아이 각각, 여인네 각각, 머리깍은 이 각각, 깍지 않은 이 각각이니 나라 사람의 마음이 그와 같이 각각 될 것을 가히 알겠도다.

 

외복에 염색하는 본의인즉 흑색이나 청색은 다듬는 데 수고도 들이지 않고 더럽지도 아니하고 더러운 것이 묻더라도 과히 버리는 폐단이 없거니와 옥색이나 백색은 쉬이 더러워지는 고로 빨기를 자주하고 다듬기를 심히 한즉 얼마 입지도 못할 뿐 아니라 무엇이 묻거나 우설(雨雪)만 한 번 맞으면 버리는 고로 심색을 숭상하는 것이요, 우린자라에서 흰 바지 입는 것으로 말하더라도 불과 몇 해 전에는 바지에도 물을 들였고 웃옷에도 아청(鴉靑)과 갈매(갈매나무의 열매로 짙은 초록빛) 같은 심청색을 숭상하였거늘 근일에 이르러서는 바지에 물들이는 것은 큰 변고로 알고 심청, 심흑을 입으면 무슨 흉한 일 당하는 것같이 아니 어찌 구습에 젖기를 그다지 혹독히 하며 일정한 규칙 없기를 그다지 심하게 하나뇨?

 

항일에 관인의 전복을 본국 토산으로 검은 빛으로 입게 한 후에 또 경무청에서 고시하기를 옥색이나 흰빛은 임금하고 평민의 주의도 심색으로 입게 하되 본월 25일로 한정하여 만일 그날이 지나면 흰옷과 옥색 입은 자는 엄징한다 하매 사람마다 무슨 심색으로 물들이기를 힘쓰는데 일정한 규모가 없고 각기 의견대로 혹 흑색, 혹 청색, 혹 회색, 혹 자색, 혹 황색을 들이되 본래 염색하는 재료가 또한 본국 토산이 없고 모두 외국에서 구하여 쓰는 것이라, 그 성질의 어떠함과 염색하는 방법이며 의복이 상하고 상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하고 무슨 빛을 사들이든지 의복이 당장에 삭아서 바래기도 하고 혹 물빛이 채(얼룩)가 져서 두세 번 들이기도 하되 물감 값은 여러 양식이 들되 의복은 맛같이 아니되고 거다한 이익은 외국인에게로 돌아가지고 얼마 전 외국인의 신문에 한국에서 염색하기에 일본 모모상범에서는 큰 이익을 보았다고 하였는지라. 만일 의복염색하는 것이 본래 일정지규가 있게 되면 본국토산 염색재료를 궁구도 하고 이왕 있던 갈매나 아청을 많이 만들 터이니 그런즉 염색 공전도 괴이치 않고 나라 이익이 외국인에게로 돌아가지도 않을 터이며, 의복이 쉬이 상하는 폐단도 없을 것이니 그 이해관계가 어떻다 하리오. 슬프다, 조령삼일(朝令三日 : 한 번 내린 명령을 사흘 만에 자주 고침)이란 말은 본국 속담이로되 오히려 믿지 않았더니 이번 일을 보매 3일은 대단히 오래 시행하였단 말이로다. 기한을 정하여 령을 내고 그 날을 당하여 어떤 데서는 도로 흑색을 금하고 어떤 데서는 백색을 금하니 백성이 어찌 할 줄을 알지 못하기는 물론하고 근일 가로상으로 내왕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청, 황, 적, 백, 흑 오색은 새로에 열 가진지 스무 가진지 잡색이 혼잡하여 대한제국에서는 무슨 빛을 숭상하는 나라라고 지정할 수 없은즉 그러게 령칙이 미쁘지 못하고 그렇게 일심이 되지 못하고 그렇게 규모가 없고 그렇게 백성이 이해를 모르고야 어찌 외국인의 수모를 면할 날이 있으리오. 백성은 학문이 없어 그렇다 하려니와 후일에 또다시 무슨 령을 낸들 누가 믿고 시행하리오. 공자 가라사대 백성을 다스리는 데 밥과 군사와 신(信) 세 가지 중에 밥과 군사는 없을지언정 신이 없어서는 못 된다 하셨고, 상앙은 나무 한개 옮기는데 오십금을 주었으니 백성에게 신을 보이고자 함이라.

 

본기자는 나라복색이 일정지규(一定之規) 없는 것과 조령의 해이함을 한탄하여 진담누설이 장황하였지만, 무슨 빛이든지 복색을 일매지게 하고 사람의 마음이 그와 같이 일심되어 세계와 동등되기를 원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