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가를 만년반석 위에 세우자"
- 제1대 대통령 취임사(1948년 7월 24일)



과거 다시 뵈는 소문-제국신문(1903. 3. 24)

관리자
2017-12-25
조회수 1728

과거 다시 뵈는 소문

 

 

제국신문 1903. 3. 24

 

 

과거 보는 법은 고금 동서양에 없을 수 없는 일이라. 이 법이 아니면 문화와 기예를 권장하지 못하며 이 법이 아니면 인재를 가리는 것이 모두 도리가 없을지니, 이는 잠시라도 없을 수 없는 법이라. 우리나라에서도 옛적에 문명을 자랑할 때에 이 법으로 문화의 근본을 삼은지라. 어찌 잠시인들 정지할 바리오마는 근년에 이르러는 폐단이 무수히 생겨 과거 보는 곳이 변시 물건 매매하는 장바닥이나 협잡 낭인이 모인 장난마당이 된지라. 그 패단을 이루다 말할 수 없거니와 문필이 유여한 자 재주로써 과거나 진사하는 법이 없어 거의 사정과 협사로 위주하매, 실로 재주 있는 선비는 피를 토할 일이라.

 

설령 이 협잡과 이 협사가 없을지라도 과거 보는 법이 지금 시세에 맞지 아니하여 선비가 다만 심장적구(尋章摘句 : 옛사람이 지은 글귀를 여기저기서 따옴) 하는  글자와 글귀나 공부할 뿐이요, 혹 옛적 중원사기나 묵은 책자나 외울 뿐이니 과거 보는 글이 또한 시, 부, 표 세 가지라. 이것으로 평생을 공부하는 것이 많이 배울수록 물정에 흐리고 시세에 어두워 내지 경향에 민정이 어떠한지 모르는즉 육대부주의 교통왕래 하는 형편이 어떠한지 더구나 자연히 모르며 내 나라 사기와 법률, 공법약장 등 모든 사건은 다 알아 볼 생각도 않은즉 이것으로는 결단코 인재를 배양한다 할 수 없는지라. 옛적에 좋던 법이니 지금도 행하면 좋겠다함은 비하건대 사람이 어려서 맞던 의복을 장성한 후에도 맞을 줄로 아는 것과 같은지라. 이러므로 경장 초기에 일제히 혁파하고 새법을 마련하여 행하려 하다가 새법은 행치 못하고 옛법만 없어졌은즉 선비의 뜻을 기를 수 없이 된지라. 유지한 자의 깊이 한탄하는 바로다.

 

각국의 과거 보는 법은 돈도 쓰지 않고 협잡과 사정이 없으며 다만 학문의 정치, 법률 등 여러 가지 과정이 있어 연한을 정하여 가지고 졸업하는 기한을 따라 급제와 진사를 뽑으매, 졸업장이 있음으로써 그 사람의 품수를 일컸나니. 이것이 곧 지금 천하의 통행하는 법이요, 또한 지공지평(至公至平 : 지극히 공평하여 치우침이 없음)하다는 법이라. 이 법이 아니고는 능히 문명부강에 나갈 수가 없으리로다.

 

청국에서는 근년까지도 과거보는 법이 풍원글귀로 택하여 인재여부를 물론하고 글귀만 잘 지으면 과거를 시키매, 이것이 큰 폐단이라 하여 각국이 무수히 의논하다가 지금은 이 법을 폐하고 각국법을 의방하여 쓰기로 법을 정하였으매, 청국도 오히려 이러하거든 당초 청국의 문명을 빌어 행하던 나라야 더욱 일러 무엇 하리오.

 

근자에 과거 복설(復設)하자는 의논이 성행하여 혹 상소하는 이도 있고 혹 헌의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당초에 시작인즉 권래에서 몇몇 괄시하기 어려운 사람을 초사에 붙여주어야 할 터인데 달리 변통하기 어려운 고로 소위 문관, 무관 자리를 원하는 이는 글씨 몇 줄을 써 퇴하고 무관은 활을 쏘아 장원을 가리는데 세력있는 사람의 화살이 과녁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과녁 옆에 땅을 파고 그 속에 활 쏘는 사람을 매복시켰다가 그 화살 떨어질 때를 보아서 다른 화살을 쏴 과녁을 맞히는 소리가 들리더라도 장원을 시키는 지라. 그 협잡하는 폐단이 이러하니 문과의 폐단이야 더욱 어떠하였으리오. 지금 과거 복설하는 자는 의논이 분등하니 큰 폐단이 다시 열릴진대 국민의 그 해를 장차 다시 어찌하리오. 필경 좋은 방책이 있어서 그런듯 하거니와 지금 세상에 국법을 날로 변하여 새법을 행할지라도 공론이 돌기도 어렵고 진보하는 효험도 바라기 어려울 것이어늘 도리어 청국이 폐하는 옛법을 우리가 홀로 행할진대 각국이 장차 무엇이라 하겠는가. 청컨대 학교제도를 확실히 세워 학문을 많이 숭상한 후에 다시 의논하여 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