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가를 만년반석 위에 세우자"
- 제1대 대통령 취임사(1948년 7월 24일)



모두 자취(自取)하는 일 (2)-제국신문(1903. 3. 30)

관리자
20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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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자취(自取)하는 일 (2)

 

 

제국신문 1903. 3. 30

 

 

본국이 통상하기 전에는 매우 유벽(幽僻 : 한적하고 구석짐)한 곳으로 남의 나라와 별로 시비될 일이 없더니 근일에 당하여서는 동양 각국의 인후(咽喉 : 목구멍)목이 될 뿐 아니라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철도를 통한 까닭에 세계의 요충지대가 되어, 가고 오는 사람이 들리지 않을 자 없고 한 번 자고 가기를 원치 않을 자 없는 길가의 주막집같이 된지라. 그 주막집에 좋은 술과 안주가 있어서 김지이지(金的李的 : 성명이 분명하지 않은 여러 사람을 두루 이를 때 쓰는 말)가 그 주인의 인선함을 알고 외상술 먹기를 청한즉 여일히 주는 지라. 한 놈 두 놈 오는 대로 하후하박(何厚何薄 : 차별있게 대함) 할 수 없어 일배부일배에 명정(酩酊 : 몹시 취함)히 취한 후에 시비가 분등하여 술청을 짓부수어 술독까지 깨어지고 술값은 백실(白失 : 밑천까지 몽땅 잃음) 하였으니 이것이 주객들의 잘못인지, 주인의 실수인지. 주객되어 외상술 달라기는 예사거니와 생면부지한 놈들이 청구하는 대로 주기를 시작하였으니 그 생애가 어찌 되겠소?

 

당초부터 외국인의 청구하는 일을 시행치 말고 법률과 신의를 세워 정부와 인민이 상부하여 조금이라도 틈이 나지 아니하였으면 외국인이 아무리 무염지욕(無厭之慾 : 끊임없는 욕심)이라도 감히 무례한 일을 못했을 것이거니와 그렇지 못하고 정부관인은 서로 시기하고 서로 먹기로 큰 의무와 큰 일을 삼고 친한 사람이든지 뇌물주는 자면 목불식정(目不識丁: 아주 까막눈을 이르는 말)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라도 벼슬을 시키고 아무리 원노릇을 잘못하여 민요(民擾 : 나쁜 정치에 항거하여 일반 백성들이 일으킨 소요 = 민란)를 맡는 자라도 포장도 하고 좋은 고을로 천전도 하여주되, 뇌물도 아니주고 바른 말하고 미운 놈이면 아무리 관중아기 같은 재주가 있고 소부허유같이 청렴한 자라도 미관말직 하나 시켰단 말을 듣지 못하였으며 송사하는 데는 선왕조에서 마련하신 금석지전은 쓸데없고 사정이 법률이 되어 죽을 죄인을 살리기도 하고 무죄한 놈을 죽이기도 하니 여간 소소한 일이야 일러 무엇하리오.

 

그런고로 외국인이 그런 사정을 알아 가지고 조선은 법률이 없고 사정이나 압제로 행세하는 나라이니 우리도 그와 같이 하여 보리라 하고 무엇을 청구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공갈이 태심하고 잘 주어도 비웃고 흉보아 가며 자기네 마음대로 못 되는 노릇이 없어서 심지어 황해도에는 아전에 방임까지 외국인의 손으로 출척이 되는 자 많다 하니 어찌 통곡할 일이 아니라 하겠나뇨?

 

일본사람의 말에 남도는 식민 기초가 되었거니와 북도 경영을 급급히 하여야 하겠다 하며 조계(租界 : 중국의 주요 시에 있던 열강국의 주민의 일정한 거주지, 외국의 행정권, 경찰권이 행사되었던 지역) 십 리 이내에는 토지를 많이 샀다고 하였으니 그렇게 계속 한다면 얼마 안 돼서 전국토지가 모두 외국인의 물건이 되지 않겠나뇨? 요새 풍설을 들으니 일인 궁기란 사람이 일본서 사주전(私鑄錢 : 사사로이 위조한 쇠붙이돈)을 무척 많이 가지고 나와서 한국 각 항구의 조계 십 리 안에 토지를 몰수히 살 터인데 처음에 일인이 산다 하면 잘 팔지 않을까 하여 아직은 한국 사람으로 앙장을 세워야 되겠다 하며 일간 떠난다는 소문이 있으니 과연 그 말이 진덕한지는 알 수 없거니와 과연 그럴진대 어찌 정부가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으며 일본 외교시보 제62호에 은행권 사건을 말하다가 끝에 말하였으되 한국이 러시아의 꾀임을 듣고 은행권 통영을 금지하더니 일본이 한 번 꾸짖는데 조선서 금령(禁令)을 환수 하였다 하고 일본은 한국을 세력범위 안에 두었다고 하였으며 한국에서 은지함은 꾀없이 한 것이 일변 생각하면 일본에서 좋은 기회를 얻음이니 이 기회를 타서 지금 보다 일층 더 큰 세력을 한국에 심어야 할 터이라. 그 방법은 일본에서 한국을 핍박하여 다시 그런 꾀없는 일을 행치 못하도록 적당한 답보를 세우는 것이 가한데 답보사건은 밝히 말하는 것 없거니와 우선 한국에 관계되는 러일협상을 파하는 것이 가할지라.

 

우리 지금 정부에서 과연 그 협상 파할 용맹이 있을는지 앖는지 하였으며 또 일본의 말하기를 러시아에서 만주에 무한한 군사를 두는 것은 일본의 고통이요, 만일 일본이 조선에 무한한 병정을 두는 것은 러시아에 고통됨이 갑절이나 더할 텐데 지금 우리는 한국에 한정된 군사를 두고, 러인은 만주에 무한한 군사를 두었으니 러인의 고통되도록 우리가 한국에 군사를 무한히 두는 것이 가하다고 하였는지라.

 

본 기자는 그 말을 들은즉 내가 잠이 깨지 못하여 몽중인지 상시인지 분변할 수가 없는 것이 나라에 정부가 있고 인민이 있은 후에야 그렇게 만모(慢侮 : 거만한 태도로 업신여김)히 알 리도 없고 그렇게 압제하는 경위도 없을지라. 그것이 다 어찌하여 그렇다 할 지경이면 모두 나의 자취요, 남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로다. 하루바삐 일심 분발하여 법률을 공평히 하고 재용을 절차있게 쓰고 내외국인에게 신의를 잃지 않게 되면 지금이라도 혹 서기지망(庶幾之望 : 거의 이루어질 듯한 희망)이 있을 듯 바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