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씻고 볼 일
제국신문 1903. 3. 27
3월 16일 일본보 부록 제391호에 한국 속의 일본세력이란 제목을 보면 가히 유지한 사람의 피 토함을 깨닫지 못하겠기로 좀들 보라고 자에 기재하노라.
일본서 옮겨가는 백성의 수효로써 한국의 일본형세를 짐작하면 2,3년 간에 흥왕함은 대단히 사람의 뜻을 견고하게 할지로다. 한국의 각 장시와 각 항구 조계(租界)안에 일인이 늘어가는 것은 물론하고 서울근처에는 영등포, 수원지방에 일인의 촌락을 이루었고, 부산근처에는 구포, 밀양, 물금, 대구 지경에 일인이 연속히 들어 가고, 조계 밖에는 울릉도에 290명 이상이고, 제주에 또한 200명이며 기타 소안도에 30명 흑산도에 40명, 죽도에 1000명가량 천산도에 220명 진도에 40명이 있으니 이 일인들은 전라, 충청 양도 바다를 우리 일본에서 독히 점령하여 고기잡기를 힘써 해마다 큰 이(利)를 얻으니, 그 어업의 경영이 잘된 것은 가히 목도한 바니 해상 식민은 여의케 왕성하였고 또 육지에는 강경포에 80명 영등포에 1040명 수원지방에 200명 대구에 30명 동래부에 10명 부산진에 200여 명이 있고 송도에 200명 해주에 20명이요, 기타 한국 산천에 일인의 발자취 안 간 곳이 없도다.
인구가 느는 것을 따라 사업도 또한 점점 늘어가며 정부 보호도 점점 진보하는 것을 보겠고 조계지에 수비대와 경찰은 이미 완전하게 되었고 경성과 부산 간의 전보는 헌병 300명이 한국 남도 교통하는 것을 보호하며 우편으로 물건 수운하는 사업도 또 근일에 크게 흥왕하여 바다에 항해하는 사업도 열에 여덟, 아홉은 일본 사람의 손을 거쳐야 되게 되었고 서울과 송도의 우편은 이미 우리 제국의 우편으로 쓰고, 영등포와 서울 인천 간의 전화도 또한 모두 우리 제국의 사업이 되었고 한국 사람 교육할 목적으로 일인이 설시한 일어학교는 점점 흥왕하여 대구, 밀양, 진주, 광주, 나주, 전주, 수원, 성진, 송도 학교가 다 장구한 기초를 만들었고 기타 거류지 십 리 내의 이익 걷어들일 수 있는 토지를 차지한 것이 대단히 많은지라.
생각컨대 이러한 좋은 경황을 얻은 소연은 일인이 마음대로 건너가게 되었고 또 한국에 우리나라 지위가 점점 떨침으로 된 것은 내외국 사람이 다 아는 바거니와 일인의 경영이 차차 성취되는 근본이로다.
우리는 이상의 좋은 경황을 광포(廣布 : 세상에 널리펴서 알림)하는 데 따라서 또 경영할 일이 있으니 우리가 한국에 옮겨가는 것과 경영하는 일이 여의함을 결단코 만족히 여기지 말지라. 한국은 실로 빈국이나 그 나라를 발달시키지 못한 연고로 빈국인 채로 있거니와 재물의 근원은 우리나라가 믿지 못할 바라. 탄환이나 사마귀만한 작은 천지에서 바르적거리지 말고 조선으로 건너가서 사업을 일으키는 것이 다만 그 한 사람의 이익뿐만 아니리라. 그러나 우리가 특별히 한탄할 바는 조선에 우리나라 사람을 심은 곳은 다만 한국 남방에만 전주하고 서울 북편과 서편에는 시작지 못한 바라. 대저 조선은 남방부터 제어하기는 어렵고 북방부터 제어하기가 용이한 것은 한국사기에 증명한 바거니와 남방에 웅거한 세력은 누누히 무너져서 오래가기 어렵고 북방의 세력을 얻은 자는 항상 조선에 향하여 장구한 세력을 가짐은 자못 조선사기를 한 번 본 사람이면 다 알 것이거니와 그 땅을 다른 나라에 맡기는 것은 분한 일이로다. 근래에 전설을 거한즉 러시아가 차차 조선 북방을 누에 먹듯하여 점점 조선북방에 지위를 굳게 한다 하니 이 소문을 들은즉 일본사람은 조선북방 경영하기가 급박하게 되었으니 아무쪼록 이 일에 주의하여 일체로 분발하여 점점 더 많이 조선으로 옮겨가서 사업을 더욱더욱 확정하여 조선 반도국을 러시아에게 맡기지 않게 함이 가하도다 .
하였더라.
눈 씻고 볼 일
제국신문 1903. 3. 27
3월 16일 일본보 부록 제391호에 한국 속의 일본세력이란 제목을 보면 가히 유지한 사람의 피 토함을 깨닫지 못하겠기로 좀들 보라고 자에 기재하노라.
일본서 옮겨가는 백성의 수효로써 한국의 일본형세를 짐작하면 2,3년 간에 흥왕함은 대단히 사람의 뜻을 견고하게 할지로다. 한국의 각 장시와 각 항구 조계(租界)안에 일인이 늘어가는 것은 물론하고 서울근처에는 영등포, 수원지방에 일인의 촌락을 이루었고, 부산근처에는 구포, 밀양, 물금, 대구 지경에 일인이 연속히 들어 가고, 조계 밖에는 울릉도에 290명 이상이고, 제주에 또한 200명이며 기타 소안도에 30명 흑산도에 40명, 죽도에 1000명가량 천산도에 220명 진도에 40명이 있으니 이 일인들은 전라, 충청 양도 바다를 우리 일본에서 독히 점령하여 고기잡기를 힘써 해마다 큰 이(利)를 얻으니, 그 어업의 경영이 잘된 것은 가히 목도한 바니 해상 식민은 여의케 왕성하였고 또 육지에는 강경포에 80명 영등포에 1040명 수원지방에 200명 대구에 30명 동래부에 10명 부산진에 200여 명이 있고 송도에 200명 해주에 20명이요, 기타 한국 산천에 일인의 발자취 안 간 곳이 없도다.
인구가 느는 것을 따라 사업도 또한 점점 늘어가며 정부 보호도 점점 진보하는 것을 보겠고 조계지에 수비대와 경찰은 이미 완전하게 되었고 경성과 부산 간의 전보는 헌병 300명이 한국 남도 교통하는 것을 보호하며 우편으로 물건 수운하는 사업도 또 근일에 크게 흥왕하여 바다에 항해하는 사업도 열에 여덟, 아홉은 일본 사람의 손을 거쳐야 되게 되었고 서울과 송도의 우편은 이미 우리 제국의 우편으로 쓰고, 영등포와 서울 인천 간의 전화도 또한 모두 우리 제국의 사업이 되었고 한국 사람 교육할 목적으로 일인이 설시한 일어학교는 점점 흥왕하여 대구, 밀양, 진주, 광주, 나주, 전주, 수원, 성진, 송도 학교가 다 장구한 기초를 만들었고 기타 거류지 십 리 내의 이익 걷어들일 수 있는 토지를 차지한 것이 대단히 많은지라.
생각컨대 이러한 좋은 경황을 얻은 소연은 일인이 마음대로 건너가게 되었고 또 한국에 우리나라 지위가 점점 떨침으로 된 것은 내외국 사람이 다 아는 바거니와 일인의 경영이 차차 성취되는 근본이로다.
우리는 이상의 좋은 경황을 광포(廣布 : 세상에 널리펴서 알림)하는 데 따라서 또 경영할 일이 있으니 우리가 한국에 옮겨가는 것과 경영하는 일이 여의함을 결단코 만족히 여기지 말지라. 한국은 실로 빈국이나 그 나라를 발달시키지 못한 연고로 빈국인 채로 있거니와 재물의 근원은 우리나라가 믿지 못할 바라. 탄환이나 사마귀만한 작은 천지에서 바르적거리지 말고 조선으로 건너가서 사업을 일으키는 것이 다만 그 한 사람의 이익뿐만 아니리라. 그러나 우리가 특별히 한탄할 바는 조선에 우리나라 사람을 심은 곳은 다만 한국 남방에만 전주하고 서울 북편과 서편에는 시작지 못한 바라. 대저 조선은 남방부터 제어하기는 어렵고 북방부터 제어하기가 용이한 것은 한국사기에 증명한 바거니와 남방에 웅거한 세력은 누누히 무너져서 오래가기 어렵고 북방의 세력을 얻은 자는 항상 조선에 향하여 장구한 세력을 가짐은 자못 조선사기를 한 번 본 사람이면 다 알 것이거니와 그 땅을 다른 나라에 맡기는 것은 분한 일이로다. 근래에 전설을 거한즉 러시아가 차차 조선 북방을 누에 먹듯하여 점점 조선북방에 지위를 굳게 한다 하니 이 소문을 들은즉 일본사람은 조선북방 경영하기가 급박하게 되었으니 아무쪼록 이 일에 주의하여 일체로 분발하여 점점 더 많이 조선으로 옮겨가서 사업을 더욱더욱 확정하여 조선 반도국을 러시아에게 맡기지 않게 함이 가하도다 .
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