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美日協商(미국과 일본이 서로 협상한 것을 의논함)
공립신보 1908. 12. 16
이번에 미, 일 양국이 다섯 조건을 협상한 데 대하여 세계 정객에 다소간 의논이 없지 아니한 바, 혹은 이 협약으로 인하여 미, 일 전쟁설이 영히 막혔다고도 하며 혹은 이 협상이 미, 일 전쟁을 몇 해 동안 물렀다고도 하니, 그 의견이 다 우리의 보는 바와 대강 같지 아니하도다.
첫째 전쟁 논란이 없어진다 함은 대범한 평화주의에서 나온 말이라, 국제상 큰 형세에 관계한 문제를 능히 한 장 외교문서로 일조에 번복할진대 세계에 전쟁을 없게 하기가 어찌 어렵다 하리요. 미, 일 간의 관계를 정돈시킨 것은 붓이 아니요, 칼인 줄로 믿는 바며,
둘째 전쟁을 물렸다는 이론으로 말할진대 오늘 형편에 근사할 듯하나 우리도 당초부터 이 전쟁이 하루 이틀에 시작될 것으로 알지 않는 바라. 급히 시작될 것이 춘추(미적미적 끌어감)하였다 함은 또한 밝은 의논이라 이르기 어렵도다.
우리의 소견으로 말할진대 이 협상이 양국의 시비를 막은 것도 아니요, 물린 것도 아니요, 시비를 준비하는 시작이라 하노라.
대저 이 이십 세기는 태평양 시대라. 유럽에 열국이 강성할 때에는 지중해가 세계의 정치 중심이 되었고 미국이 중간에 일어나며 대서양의 중요지가 되더니 지금은 졸지에 동양의 한 나라가 강성하여지매 그 형세가 자연 태평양으로 옮겨가서 장차 큰 정계상 해지가 되리니, 세계 정치의 큰 형세가 비교하건대 물이 낮은 데로 흐름과 같아 매양 약한 곳으로 쏠려 가다가 그 약한 곳이 또한 남과 같이 강하게 된 후에야 비로소 평균한 정도를 회복하여 평화를 유지할지로다. 태평양 동서 양편에 두 나라가 새로 일어나매 각각 자기의 세력을 확장하여 주인 없는 양 해상에 주장이 되고자 함이 실로 자연한 생각이라. 미국이 필리핀에 해군 근거지를 설치함과 동시에 만주 개방문제가 다 서편 세력을 동편에 확장하고자 하는 표적이요, 팰리포니아에 일인이 해구를 잡는 권리와 하와이 등지에 일본 이민문제와 상해에 일인 학생 권한이 다 동편 세력을 서편 언덕에 새우고자 함이라. 이는 한두 사람의 정책이 아니요, 양국 인심이 자연히 생기는 형세인즉 이 충돌은 양국 정부의 세력으로도 막을 수 있으리라 하노라.
이 협상의 제일, 제삼 두 조선에 양국은 평균한 상업 권리와 영토 권리를 서로 공경한다 하였으니, 이는 곧 태평양을 양국이 함께 차지하자 함과 같은지라. 공한 물건에 주인이 둘이면 화평한 결과는 얻기 어려울 것이요, 하물며 양국의 서로 믿는 마음이 든든할진대 어찌 이렇듯 약조하기에 미치리오. 이 글이 장차 시비의 혼단이 될 것이 분명히 드러났으며 제이, 제사 두 조건에 청국 독립과 영토 안전을 유지하며 각국의 상업상 평등 권리를 보존한다 하였으니, 양국이 진실로 실심 종사할진대 이것도 또한 의문되는 말이라. 팔 년 전에 미국 외부대신 헤이씨의 만주개방 문제에 다 포함한 말이요, 각국이 다 낙종한 중에 일본이 독히 이 정책을 존종한다 하였으니 양국 간에 피차 흠결이 없을진대 어찌 이 글이 있겠으며 만일 흠결이 있을진대 이 글이 그 흔단을 없이함이 아니요, 도리어 더 만들어 놓는 것이며,
제5조에 이상의 말한 바를 실시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처를 행할 때는 양국 정부가 서로 먼저 의논하여 결정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두 정부를 결박하여 자유행동을 못하게 함이라, 후일 시비가 이에서 많이 생기리라 하노라.
알본이 갑오년 전쟁을 차릴 때에 십년 전기하여 히롱장과 천진조약을 정하고 피차에 조선 일에 대하여 먼저 서로 의논하여 행한다 한 후에 등한한 기틀을 타서 청병의 뒤를 따라 일인이 한국에 상륙하였으며 러일전쟁에 러일 담판이 먼저 시작되었으며, 그 이에 무수한 전쟁이 그 시작을 항상 외교로 여러 가지가 되었으니 오늘날 미, 일협상이 그 사이는 비록 평화를 주장한다 하였으나 그러한즉 전연히 평화로 정돈되기를 바라기 어렵다 하노라.
▲ 五條協約 譯文
제1조 미, 일 양국 정부는 태평양에서 그 상업을 자유로 하며 또한 평화로 하여 장려할 일
제2조 미, 일 양국 정부는 호말이라도 침략적 주의를 두지말고 태평양에 제하여 현금 상태를 유지하며 청국에 제하여 상공업의 기회 균점을 보호하여 줄 일
제3조 미, 일 양국은 태평양에서 피차의 영토를 공경할 일
제4조 미, 일 양국은 할 수 있는 대로 평화적 수단을 다하여 청국의 독립 보전과 청국에 있는 미국인민의 상공업 기회 균점주의를 옹호하기로서 각국 상민의 공동이익을 보호케 할 일.
제5조 일조에 불행한 일이 있어 이상 조건에 말한 바 태평양 현상이나 혹 청국에서 기회 균점의 방침을 위태케 될 염려가 있을 것같이 되면 미, 일 양국 정부는 필요한 수단 방법에 관한 협정을 행할 목적으로서 피차 간에 협상을 여는 것이 가함.
이상 다섯 가지는 일본대사 고평소오랑(다가히라오고로)이가 미국 국무경 우룻씨에게 보내어 피차 간에 이대로 교한이 되었더라.
論美日協商(미국과 일본이 서로 협상한 것을 의논함)
공립신보 1908. 12. 16
이번에 미, 일 양국이 다섯 조건을 협상한 데 대하여 세계 정객에 다소간 의논이 없지 아니한 바, 혹은 이 협약으로 인하여 미, 일 전쟁설이 영히 막혔다고도 하며 혹은 이 협상이 미, 일 전쟁을 몇 해 동안 물렀다고도 하니, 그 의견이 다 우리의 보는 바와 대강 같지 아니하도다.
첫째 전쟁 논란이 없어진다 함은 대범한 평화주의에서 나온 말이라, 국제상 큰 형세에 관계한 문제를 능히 한 장 외교문서로 일조에 번복할진대 세계에 전쟁을 없게 하기가 어찌 어렵다 하리요. 미, 일 간의 관계를 정돈시킨 것은 붓이 아니요, 칼인 줄로 믿는 바며,
둘째 전쟁을 물렸다는 이론으로 말할진대 오늘 형편에 근사할 듯하나 우리도 당초부터 이 전쟁이 하루 이틀에 시작될 것으로 알지 않는 바라. 급히 시작될 것이 춘추(미적미적 끌어감)하였다 함은 또한 밝은 의논이라 이르기 어렵도다.
우리의 소견으로 말할진대 이 협상이 양국의 시비를 막은 것도 아니요, 물린 것도 아니요, 시비를 준비하는 시작이라 하노라.
대저 이 이십 세기는 태평양 시대라. 유럽에 열국이 강성할 때에는 지중해가 세계의 정치 중심이 되었고 미국이 중간에 일어나며 대서양의 중요지가 되더니 지금은 졸지에 동양의 한 나라가 강성하여지매 그 형세가 자연 태평양으로 옮겨가서 장차 큰 정계상 해지가 되리니, 세계 정치의 큰 형세가 비교하건대 물이 낮은 데로 흐름과 같아 매양 약한 곳으로 쏠려 가다가 그 약한 곳이 또한 남과 같이 강하게 된 후에야 비로소 평균한 정도를 회복하여 평화를 유지할지로다. 태평양 동서 양편에 두 나라가 새로 일어나매 각각 자기의 세력을 확장하여 주인 없는 양 해상에 주장이 되고자 함이 실로 자연한 생각이라. 미국이 필리핀에 해군 근거지를 설치함과 동시에 만주 개방문제가 다 서편 세력을 동편에 확장하고자 하는 표적이요, 팰리포니아에 일인이 해구를 잡는 권리와 하와이 등지에 일본 이민문제와 상해에 일인 학생 권한이 다 동편 세력을 서편 언덕에 새우고자 함이라. 이는 한두 사람의 정책이 아니요, 양국 인심이 자연히 생기는 형세인즉 이 충돌은 양국 정부의 세력으로도 막을 수 있으리라 하노라.
이 협상의 제일, 제삼 두 조선에 양국은 평균한 상업 권리와 영토 권리를 서로 공경한다 하였으니, 이는 곧 태평양을 양국이 함께 차지하자 함과 같은지라. 공한 물건에 주인이 둘이면 화평한 결과는 얻기 어려울 것이요, 하물며 양국의 서로 믿는 마음이 든든할진대 어찌 이렇듯 약조하기에 미치리오. 이 글이 장차 시비의 혼단이 될 것이 분명히 드러났으며 제이, 제사 두 조건에 청국 독립과 영토 안전을 유지하며 각국의 상업상 평등 권리를 보존한다 하였으니, 양국이 진실로 실심 종사할진대 이것도 또한 의문되는 말이라. 팔 년 전에 미국 외부대신 헤이씨의 만주개방 문제에 다 포함한 말이요, 각국이 다 낙종한 중에 일본이 독히 이 정책을 존종한다 하였으니 양국 간에 피차 흠결이 없을진대 어찌 이 글이 있겠으며 만일 흠결이 있을진대 이 글이 그 흔단을 없이함이 아니요, 도리어 더 만들어 놓는 것이며,
제5조에 이상의 말한 바를 실시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처를 행할 때는 양국 정부가 서로 먼저 의논하여 결정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두 정부를 결박하여 자유행동을 못하게 함이라, 후일 시비가 이에서 많이 생기리라 하노라.
알본이 갑오년 전쟁을 차릴 때에 십년 전기하여 히롱장과 천진조약을 정하고 피차에 조선 일에 대하여 먼저 서로 의논하여 행한다 한 후에 등한한 기틀을 타서 청병의 뒤를 따라 일인이 한국에 상륙하였으며 러일전쟁에 러일 담판이 먼저 시작되었으며, 그 이에 무수한 전쟁이 그 시작을 항상 외교로 여러 가지가 되었으니 오늘날 미, 일협상이 그 사이는 비록 평화를 주장한다 하였으나 그러한즉 전연히 평화로 정돈되기를 바라기 어렵다 하노라.
▲ 五條協約 譯文
제1조 미, 일 양국 정부는 태평양에서 그 상업을 자유로 하며 또한 평화로 하여 장려할 일
제2조 미, 일 양국 정부는 호말이라도 침략적 주의를 두지말고 태평양에 제하여 현금 상태를 유지하며 청국에 제하여 상공업의 기회 균점을 보호하여 줄 일
제3조 미, 일 양국은 태평양에서 피차의 영토를 공경할 일
제4조 미, 일 양국은 할 수 있는 대로 평화적 수단을 다하여 청국의 독립 보전과 청국에 있는 미국인민의 상공업 기회 균점주의를 옹호하기로서 각국 상민의 공동이익을 보호케 할 일.
제5조 일조에 불행한 일이 있어 이상 조건에 말한 바 태평양 현상이나 혹 청국에서 기회 균점의 방침을 위태케 될 염려가 있을 것같이 되면 미, 일 양국 정부는 필요한 수단 방법에 관한 협정을 행할 목적으로서 피차 간에 협상을 여는 것이 가함.
이상 다섯 가지는 일본대사 고평소오랑(다가히라오고로)이가 미국 국무경 우룻씨에게 보내어 피차 간에 이대로 교한이 되었더라.